인 지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 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12 10:11

수정 2009.01.12 10:11


사진은 12일자 문화화상에!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전

구한말의 풍운아 석파 이하응(1820∼1898). 훗날 흥선대원군이 된 그는 숱한 일화를 남겼고 먹으로 그린 난초에 관한한 최고의 예술가였다. 요즘에도 걸핏하면 석파의 ‘묵란첩’이 공개되곤 하지만 대부분이 가짜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생활이 어려울 때 자신이 그린 묵란(墨蘭)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데다가 그의 주변에 있던 선비들이 난을 쳐 제법 잘그렸다고 생각하면 석파가 자신의 낙관을 찍어줌으로써 비롯된 위작이 다른 예술가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파 이하응이 직접 그린 1887년 작 ‘병란도(甁蘭圖) 대련’(69×39㎝) 한쌍과 ‘묵란첩(墨蘭帖)’ 10폭(33.5×44.5㎝)이 갤러리 학고재에 의해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된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02-720-1523)에서 개최되는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展’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석파 이하응부터 춘전 이용우까지 근대 서화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근대서화는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잊혀진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태어난 탓에 제대로 대접 한번 받지 못한 채 지내온 것이다.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지난 90년대말부터 꾸준히 일본을 드나들며 근대서화를 수집하기 시작해 500여 점을 모았다. 그중 근대 작가 37명의 서화 120점을 골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예술적 발자취를 통해 한국의 근대미술사를 새롭게 조망해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며 “일본을 방문했거나 망명객으로 살았던 이들의 수묵화나 서화작품에서 우리는 오히려 전통형식의 근대화한 면모를 재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자유 분방하면서 개성미 넘치는 파격의 화면 운용과 필묵법이 회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감상포인트는 당시의 예술가를 서로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파 이하응과 그의 곁에서 묵란도 대필 화가의 일을 하기도 했던 옥경 윤영기를 비교해보거나 어문 황철과 몽인 정학교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황철과 정학교는 파격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서화풍을 선보여 근대서화를 새롭게 해석할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이태호 교수는 설명한다.

이와 함께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 가운데 누가 가장 잘 그렸나를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관람의 또다른 매력이다.
권력에 대한 무상함을 난초를 토해낸 석파가 난초의 최고봉이었다면, 해강 김규진은 ‘월하죽림도’ 10폭 병풍과 ‘풍죽도’ 등에서 보듯이 대나무의 최고봉이었다. 또 몽인 정학교는 괴석과 난죽을 즐겨 그렸는데, 담백하면서도 예리한 필치로 바위의 특성을 간결하게 표현한 그의 괴석 그림은 당대 제일로 꼽혔다.


우찬규 대표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맞아 일제강점기 등 어려운 시기에도 예술의 꽃이 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전시를 열게 됐다”며 “개별적인 작품 판매는 하지않고 미술관 개관을 희망하는 컬렉터에게 일괄판매하거나 추후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noja@fnnews.com노정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