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정의 뮤지컬피버] 렌트

‘렌트’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될 당시 관객들은 오페라 ‘라보엠’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뉴욕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냈다. 조나단 라슨이 원했던대로 MTV세대를 위한 뮤지컬의 탄생은 신선했고 또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관객들은 ‘렌트’를 이미 알만큼 알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 남경주·최정원 주연으로 국내 초연된 ‘렌트’는 그 이후에도 네 차례나 더 공연됐다.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은 새로 캐스팅된 배우들에게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관객들은 그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선배’를 이미 여러차례 무대에서 만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2009년판 ‘렌트’는 신인배우들을 대거 투입했다는 측면에서 뮤지컬 속 젊은 예술가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에 무대에 오른 젊은 배우들이 조나단 라슨이 원래 꿈꿨던 캐릭터로 보여지지는 않았다.
드라마의 한 줄기를 이루는 로저와 미미의 사랑 이야기에서 로저는 과연 미미를 사랑하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알수 없는 모호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미미를 일부러 내치는 순간에도, 마침내 미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로저의 감정은 그다지 전달되지 않았다. 상처를 간직해서 더욱 섹시한 로저를 보여주기엔 유승현의 노래와 연기 모두 아쉬웠다.
미미는 열아홉살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클럽의 댄서이자 약물 중독자, 에이즈 보균자다. 조민아는 어리지만 세상 쓴맛 단맛을 다 아는 미미가 되기에는 너무 귀엽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마크는 괴짜이지만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인데 배지훈의 마크는 전형적인 공부벌레로만 보여 아쉬웠다.
특히 부잣집 딸과 결혼하면서 친구들을 배신한 베니(고비현)는 가난한 뉴욕의 예술가에서 순식간에 여피족으로 바뀐 인물인데 이번 무대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여피가 아닌 영락없는 사채업자의 행색이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삼류 양아치 건달로 친구들을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연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캐릭터는 철거반대 퍼포먼스를 했던 모린(최혜진)과 여장남자 역할의 엔젤(이지송)이다. 그러나 이 둘의 캐릭터는 워낙 독특해서 ‘렌트’가 공연될 때마다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콜린스(최재림)였다. 저음의 바리톤 목소리와 안정적인 노래를 선사한 최재림은 경력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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