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칼럼] 윤증현은 대못 뽑을 수 있을까/박희준 논설위원
정부가 정책금리를 내려도 은행창구에서는 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싼 이자로 돈을 풀어도 기업으로 가지 않아 기업들의 아우성이 높다. 은행들이 높은 금리를 주는 단기금융상품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하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설을 앞두고 돈을 못 구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입술은 바싹 탔고 은행이 밉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하소연이 은행권에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은행들은 과거 공공성이 강한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 변신한 지 오래다. 대통령이 나선다고 해서,장관이 재촉한다고 해서 부실 위험이 불을 보듯 뻔한 기업에 선심 쓰듯 돈을 풀지는 않는다. 은행장과 직원들은 수익을 내 배당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외국인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16일 현재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KB금융이 57.91%, 하나금융지주 64.65%, 외환은행 72.94%, 신한지주 51.09%로 매우 높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우리금융이 9.98%로 비교적 낮다. 지방은행인 대구은행도 무려 60.86%나 된다.
이런 지분율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정부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수 개인 투자자가 은행 주식을 사들여 대주주가 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른 은행들도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느라 제 코가 석자여서 자금 여력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돈을 쌓아놓고 있는, 제조업을 하는 대기업, 즉 산업자본이 기댈 만한 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산업자본은 은행의 소유한도를 4%로 묶어 은행업 진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름하여 금산분리정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은산(은행과 산업자본) 분리다. 정부가 이 비율을 10%로 높이기 위해 관련법을 고치려 하자 시민단체와 야당은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하고 있다.
주된 반론은 이렇다. 산업자본이 은행 대주주가 된다고 해서 정부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들도 장사꾼인 이상 정부가 하란다고 해서 부실해서 망할 게 뻔해 보이는 기업에 돈을 대줄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로 전락하고 금융업 부실이 산업 부실로 번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규제완하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염려도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은행만의, 은행만을 위한, 은행에 의한 은행업의 영위를 외치는 은행권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돈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발버둥을 치든 말든 지금처럼 외국인들이 은행을 지배하고 은행원들이 배만 불리는 체제를 공공히 하자는 주장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10년간 은행이 달라진 게 있는가. 외국인들이 와서 무슨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했는가. 기껏해야 환헤지 금융상품인 키코를 팔아 기업을 도산케 한 게 다가 아닌가.
은행들이 과거 금융기관으로서 지녔던 ‘공공성’을 요구할 수 없는 시대라면 최소한 경쟁을 시켜서 서비스를 개선하게 하고 비용을 낮출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다수 은행 고객을 위해 바람직하다. 길은 터주되 진입과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매우 엄격하게 하고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통신과 방송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진입장벽을 철폐하는 마당에 굳이 은행업만 울타리를 쳐서 보호해야 할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19일 개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기용된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내놓을 정책에 주목한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본에 대못질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금산분리 완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주인공이다. 대못을 뽑을 수 있을까.
/john@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