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지 299통의 비밀편지 정조 막후정치의 실체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쓴 비밀 편지 299통의 내용이 공개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검토’를 주제로 한 학술 대회에서 정조가 재위 말년 예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있던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비밀 편지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1796년부터 1800년까지 주고받은 이 편지 중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수록된 것은 단 한 통도 없다. 홍재전서는 정조 23년(1799)에 편집하기 시작해 190편으로 정리됐으며, 정조 사후 2년만인 1801년에 말년의 저술을 덧붙여 재편집했다가 1814년에 출판됐다.

따라서 서찰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국왕과 주요 대신이 현안을 놓고 갈등하고 여론의 동향을 캐는 등 통치 행위의 이면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는 이 편지가 보물 이상의 가치를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조는 비밀 편지의 내용이 누출될까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편지마다 ‘此紙卽丙之’(이 편지는 보는 즉시 불에 태워라),‘此紙卽洗之 或還送如何’(세초하든지 돌려보내든지 하라) 등의 문구를 강조하며 보안에 신경쓴 흔적이 두드러진다. ‘세초’란 종이를 물로 씻어 재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1979년 7월 7일에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이 편지는 보는 즉시 찢어버리든지 세초(洗草)하든지 하라! 한 가지 염려가 늘떠나지 않는 것은 비록 집안에서라도 혹시 조심하지 않는 데 있다. 경이 만약 각별히 치밀하게 한다면 이런 염려가 어디서 나오겠는가?(중략) 이러한 서찰은 경이 스스로 세초하는가, 아니면 경의 아들을 시켜 세초하는가? 처리할 방법을 듣고 싶으니, 나중의 편지에 반드시 한번 언급하여 이 의심을 풀어주기 바란다”처럼 편지의 내용이 새어나가는 것을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또 “계속 나랏일로 바빠 아마도 쉴 틈이 없을 듯하다. 밤사이 잘 있었는가? 요사이 소식은 어째서 알려주지 않는가?”라며 심환지를 재촉했으며 급한 사안이 있을 때에는 하루에 무려 4통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정조는 심환지 한 사람만 비밀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았다. 노론 벽파인 심환지와 대비되는 남인계 거두 채제공(1720∼1799)에게 보낸 편지도 최근 발굴됐고 외사촌인 홍취영과 주고 받은 편지 39점도 공개된 바 있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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