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을 만날 때 가끔 성인지예산을 아는지 물어보곤 한다. 대부분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며 어떤 이는 성인지(成人紙)로 알아듣고는 그런 곳에도 국가예산을 지원하느냐며 농으로 웃어넘긴다. 물론 필자 개인의 경험이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성인지예산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성인지예산(性認知豫算·gender budget)'이란 국가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를 말한다(국가재정법 제26조). 예컨대 가로등설치 예산이 감소한다면 이는 여성대상 범죄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공공의료비 예산이 감소하면 여성의 가족 병간호 역할의 증가를 가져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감소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인지예산서는 예산안 첨부서류로서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당시 근거가 마련됐으며 2010년도 예산안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와 여성가족부가 정한 지침에 따라 각 중앙관서의 장이 작성하면 기획재정부가 그 내용을 심의해 확정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 2010년도 성인지예산서는 195개(약 7조3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대상으로 분석이 이뤄졌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주도해 성인지예산서를 작성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10여개국에 불과하며 게다가 근거법령을 가진 국가는 프랑스와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 외형적 수준만큼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은 대부분 성평등 관련 특정사업이나 분야에 대한 과거 성과만을 평가·서술하는 수준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예산사업별로 구체적인 성별 수혜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성인지예산서를 도입했고 지금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인 호주도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 초반에 최대 166개 사업을 분석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대상사업 수인 195개는 적지 않은 수치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올해 5월 17일부터 국가재정법이 개정·시행됨에 따라 성인지예산서는 양적, 질적으로 크게 향상될 예정이다. 종전 성인지예산서에는 예산사업만을 대상사업으로 작성했지만 내년부터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공공기금의 주요 사업이 포함된다. 이로 인해 내년에는 성인지예산서 대상사업수가 올해 195개에서 300개 이상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또한 성인지예산서의 내용에 성평등 기대효과, 성과목표, 성별 수혜분석 등의 다양한 분석이 한층 보강될 계획이다.
최근에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각 부처는 성인지예산 담당관제를 신설했다. 이는 성인지예산을 정부의 핵심업무로 책임있게 수행한다는 의지 표명과 더불어 성인지예산에 대한 인식 확대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성인지예산서는 예산안 첨부서류로서 법정서류의 일환이라는 특성 때문에 객관성을 위주로 작성돼 성 편향성의 원인 및 정책대안 등에 대한 내용이 외국에 비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각종 연구기관의 분석 등을 통해서 보완될 수 있고 민간영역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흔히 이분법적 관점에서 성인지예산이 여성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냐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통합적인 관점에서 특정 성(性)이 차별적으로 불리하거나 유리하지 않도록 적정한 조정판 역할을 하는 바로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제도라는 점이 널리 이해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