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턱밑으로 갖다댄 채 배우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살폈다. 눈빛은 집요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옆집 아저씨같은 따뜻함, 소박함이 더 강했다. "판타스틱" "베리 굿". 긴장의 오디션을 끝낸 응시자를 향해 그는 환호와 포옹으로 답례를 했다.
지난 7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열린 뮤지컬 '원스' 오디션 현장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이 뮤지컬 오리지널 연출가 존 티파니(42)의 환한 웃음이었다.
그는 독창적인 무대를 추구해온 비교적 아방가르드적 성향이 짙은 연출가다.
상업뮤지컬과는 거리가 있는 이 연출가를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이 굳이 섭외했던 이유는 '원스' 원작이 가진 실험성과 그의 연극 형식이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 영화는 아이리시 기타리스트와 체코 이민자 피아니스트의 우연한 만남, 그들의 아팠던 지난 사랑,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설렘을 다룬 작품이다.
네 명의 프로듀서로부터 끈질긴 섭외를 받았을 당시 티파니는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은 상태였다. "영화음악 다운받는 일부터 했어요. 영화는 1주일 후 봤습니다. '이걸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다니, 미친 짓이야' 이 생각을 먼저 했어요. 다큐멘터리 같은 조용하고 단순한 영화잖아요." 하지만 그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작품에 빠져들었다. "결국 작품이 저를 붙잡았어요. 스토리의 유전자(DNA)가 뭔지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모양을 구상했어요. 처음엔 어떤 모양이 맞을지 감이 안 잡혔어요. 그런데 기존 뮤지컬 형식대로 했다간 작품이 죽을 거라는 건 뻔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13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와 노래를 하는 이른바 '액터 뮤지션' 형식, 이런 배우들이 꾸미는 공연 전 20분 프리쇼와 인터미션의 즉흥 연주는 '원스'의 외부 골격이다. 여기에 음악으로 비로소 소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품의 DNA로 박혀 있다.
중심 무대인 더블린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 세트는 금관악기 밴드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축적된 꼬마 티파니의 기억과 포개진다. "아버지의 콘서트가 끝나면 분장실에서 파티가 열렸어요. 음악과 파티가 뒤섞였죠. 제 깊은 내면의 숨겨진 장면이 실은 거기에 많이 닿아 있어요. 돌아가면서 음악을 하고, 파티를 즐기면서 각자의 주제를 털어내는 게 '원스'하고도 맞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2012년 브로드웨이서 초연돼 그해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을 휩쓴 그의 첫 상업뮤지컬은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오디션 지원자들은 각자 자신의 악기를 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등장했다. 바루스카 역을 지원한 강수정은 아코디언으로 구수한 건반 연주를 들려줬다. 스벡과 안드레를 지원한 정욱진은 기타, 베이스, 만돌린, 피아노 연주까지 소화했다. 음악감독 마틴 로는 즉석 주문으로 배우들의 순발력을 체크했다. "G와 C코드를 볼 수 있는 곡을 한번 해보세요." "자신있는 한국 노래는 뭐가 있습니까." 한없이 진지한 자세로 포즈를 잡은, 스벡 지원자 임진웅이 무심한 표정으로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를 땐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왔다.
티파니는 "한국 배우들의 재능에 깜짝 놀랐다"며 연방 감탄했다. 하지만 노래, 연기, 안무, 연주 네 가지 능력을 모두 가진 액터 뮤지션을 뽑는 일이 그리 간단치는 않은 거 같다. 조연급 배우들의 윤곽은 대략 나왔지만, 남녀 주역은 사실상 난항이다. 특히 이 뮤지컬의 얼굴이랄 수 있는 남자 주인공 지원자들은 대부분 티파니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는 "브로드웨이 초연 때도 캐스팅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오디션 심사를 위해 지난 4일 입국한 티파니는 10일 돌아갔다. 공연은 오는 1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올라간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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