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 전리품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06 17:03

수정 2017.11.07 10:52

[윤중로] 전리품

전리품은 오래 전 시작된 전쟁의 역사와 같이했다. 점령한 토지뿐만 아니라 무기, 금은보화, 문화재, 특정기술자, 심지어 여성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전쟁터의 보상쯤으로 당연시됐다. 더러는 전투보다 전리품을 먼저 챙기는 데 급급해 전투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전리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인물로는 칭기즈칸이 꼽힌다. 그는 개인약탈을 금하고 전쟁터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공헌도에 따라 골고루 분배함으로써 불만의 소지를 없앴다. 강력한 조직력으로 전쟁터마다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리품의 공정한 분배가 한몫을 했음직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재인정부조차 과거 전쟁 승리자가 되뇔 법한 전리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난센스다. 주요 인사를 둘러싸고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니, 낙하산이니, 정피아 내지 관피아 따위의 그동안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었던 적폐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원랜드 신입사원의 절대 다수가 부정청탁 대상자였다는 사실은 국민들, 특히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신입사원 선발에서 여성 합격자를 줄이기 위해 면접평가표를 조작했다는 한국가스안전공사, 변호사 채용규정을 바꿔 청탁대상자를 합격시켰다는 금융감독원 모두 우리 사회 반칙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들 공공기관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그래서 바늘귀 같은 취업시장을 뚫기 위해 오늘도 머리 싸매고 책과 씨름한다. 이들에게 투명한 절차를 통한 공개채용은 장식에 불과할 뿐 '연줄이나 빽이 진정한 실력'이라는 고정관념을 재확인시켜 줬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인사.채용비리 근절 추진계획'이 발표됐다. 문 대통령도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청년들이 무엇 때문에 절망하는지 보여줬고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공기관 임원인사에서 낙하산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채용비리 근절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효과는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에 수긍이 간다. 전문성보다 특권과 부정한 수단을 통해 자리를 차지한 인사가 외부의 채용청탁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빽을 동원해 입사한 신입사원과 다를 게 뭐냐는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재조(再造) 수준의 개혁을 통해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정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판여론이 비등했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현 정부는 단절할 것이라고 믿는다. 공공기관은 대통령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집단이 전리품처럼 나눠 결속을 도모하고 충성도를 높여주는 잔칫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질 인사를 지켜볼 일이다.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