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산업계, 주 52시간 근무 검토] 근로시간 단축땐 年 12兆 추가 부담…산업계 "단계적 시행을"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06 17:19

수정 2017.11.06 22:04

저녁 있는 삶도 좋지만… 당장 내년 시행 기업 ‘비상’
제조업 특성상 야근 불가피
생산성 하락 어떡하나…
근로시간 줄면 감산 내몰려.. 中企 초과근무로 처벌 우려
[산업계, 주 52시간 근무 검토] 근로시간 단축땐 年 12兆 추가 부담…산업계 "단계적 시행을"

국내 대표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움직임에 나서면서 근로시간 단축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산업 경쟁력 약화 등 심각한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될 경우 연간 12조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은 물론 수많은 기업이 사법처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새 정부가 행정해석 폐기를 통해 즉시 시행하기보다 충분한 입법절차를 거쳐 업종별 단계적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울며겨자먹기'식 근로단축

6일 산업계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행정해석 폐기를 통해 현행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내년부터 시행키로 하면서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비상이 걸렸다. 여야도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 근로시간 단축을 합의한 상황이라 제도 시행은 시간문제다.
이미 상당수 대기업이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있지만 제조업 특성상 야근, 특근 등 연장근로나 휴일근로가 많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기업 중에서는 현대차에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 8월 말부터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시험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자율 출퇴근제에 따라 주 40시간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만약 이를 초과해 근무할 경우 부서 임원에게 통보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갑작스러운 제도 도입 시 혼란을 막기 위한 '예행연습'이라는 입장이다.

SK는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나 SK이노베이션 등은 이미 3교대나 4교대 방식으로 생산직의 근로시간을 52시간 이하로 맞추고 있지만 추가 연장근로 금지나 사무직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화그룹은 대다수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의 근로시간을 적용하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화학.방위산업 등 주력사업이 대부분 장치산업인 탓에 대량의 노동력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유통 등 일부 사업분야에서 근로시간이 초과되는 부문이 있다면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정책 방향에 맞춰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GS 등 다른 그룹들도 정부와 재계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기업 사정 너무 몰라'

산업계는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산업 경쟁력 약화, 노동유연성 경직, 노사관계 악화 등 한국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이 급격히 단축되면 기업들이 신규 채용보다 감산(생산량 감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노동유연성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구인난, 재정여건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법을 준수하기 위해 휴일근로를 원천 금지하면 초과급여가 삭감되고, 이를 보전하라는 노조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기업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1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부적으로는 인력보충에 따른 직접노동비용 9조4000억원, 간접노동비용 2조7000억원,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에 따른 임금상승분 1754억원 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는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인건비 부담이 23.5%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들이 무더기 형사처벌 대상에 오를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생산성 약화나 납기일 준수 등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불가능한 기업들이 근로시간 초과로 단속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고위 관계자는 "구인난이 심한 중소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즉시 시행보다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산업계의 혼란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 시 대기업보다 중소 협력사의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이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인력사정이 열악한 중소 협력사는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근로자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하는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전용기 조지민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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