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코로나 계곡' 이념으론 못 넘는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1 18:55

수정 2020.05.11 18:55

586 실세 실용마인드 절실
대의명분 집착 송시열 대신
실사구시 추구 김육 따라야
[구본영 칼럼] '코로나 계곡' 이념으론 못 넘는다
코로나19 사태는 역사상 한 번도 겪지 못한 위기다. 그래서인지 경제 충격파를 넘어서는 길도 아득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 경제사에 정통한 이헌창 교수(고려대)의 신간 '김육 평전'을 읽고 무릎을 쳤다. 조선 중기 대동법과 동전 통용정책 등 조세·화폐 개혁을 추진한 경세가의 족적이 코로나발 경제난 극복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줬다.

시대는 영웅을 부르기 마련인가. 김육이 노년에 정승에 오를 당시 조선 경제는 '그라운드 제로' 상태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거치며 조세 기반이었던 인구는 격감하고, 토지는 황폐해졌다.
그래서 토지 결수에 따라 정량의 쌀로 모든 조세를 납부하도록 한 대동법은 신의 한 수였다. 각종 공물(특산물)을 납부하던 방식에 따른 비리는 없애고, 민초들의 실질적 부담도 줄이면서다.

그러나 그만큼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인물도 없다. 벼슬은 영의정이었지만 효종의 배향공신(종묘에 왕과 함께 모시는 공신)에도 못 올라갔을 정도로. 당시 최대 영예인 문묘 종사는 상복을 몇 년 입는 게 옳은지를 따지며 예송논쟁을 일삼던 주자학자들 몫이었다. 안민부국(安民富國)을 추구한 김육 대신 망하고 없는 명(明)에 대한 의리에 집착한 송시열류를 택하면서 조선은 망국을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정부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계 각국이 지금 바이러스 차단을 빌미로 성곽을 쌓아올리고 있다.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이 무너지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엔 치명타다.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할 판이다. 경제위기 대응에 집중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대고 있으니 문제다. 4·15 총선 압승 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국난 극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당선자는 '토지공개념 개헌론'을 점화했다. 중진인 송영길 의원은 한술 더 떠 대통령 중임제 개헌 군불을 뗐다.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애드벌룬까지 띄웠다.

이처럼 개헌과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정치 현안이 전면에 부각된다면? 고질적 여야 진영 대결로 문 대통령의 남은 2년 임기는 바람 잘 날 없게 될 게다. '코로나 경제대전'에서 과녁을 정조준하기 어렵게 되는 건 불문가지다.

그래서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여권의 책임은 무겁다. 혹여 야당이라는 브레이크가 약하다고 이념과잉으로 치닫다간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현대 중국의 '홍(紅·이념) 대 전(專·전문성)' 투쟁사의 결말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혁명의 광풍에서 살아남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가 끝내 중국을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올린 원동력이었다. 반면 현 시진핑 국가주석은 '홍'이 득세했던 마오쩌둥 시절로 회귀하려다 우한발 코로나 재난을 맞았다는 뒷말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그간 산업화와 정보화에서 중국에 앞섰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는 중국에 외려 뒤처진 게 현실이다.
현 정권의 핵심에 포진한 586 실세들의 자세 전환이 중요해 보이는 이유다. 어느새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된 이들이 철지난 운동권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실용 마인드로 재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송시열이 아닌 김육이 필요한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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