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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페이스북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1 15:10

수정 2020.09.01 18:35

[이구순의 느린걸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페이스북
[파이낸셜뉴스]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다?" 한때 상식선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법원 판결을 얘기할 때 단골로 인용되던 말이다.

상식적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지만, 법 조항을 잘게 쪼개 처벌을 피하는 일부 사람을 향해 던지는 일반인들의 비웃음이기도 하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우리 법원에서 이런 판결을 받은 일이 있다. "(페이스북이 한국 사용자들의 이용경로를 변경해) 페이스북 이용이 지연되고 불편을 겪기는 했지만, 이용을 제한한 것은 아니다"는 판결이었다.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속절없이 모래시계만 돌고 있으면 어떻게 할거야?" 판결 이후 주변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툭 던져봤다. "욕하지~ 끊고 바로 나오지!"
인터넷 서비스가 그렇다.
서비스 탭을 눌러 기다림 없이 바로 연결되지 않으면 짜증부터 난다. 10초 30초 기다리는 일은 없다. 끊고 나왔다 다시 접속하거나, 아예 안 쓰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은 접속 속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에 거액을 투자한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던 중 접속 경로를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한국내 서비스를 위해 통신망 사용료를 투자하는 대신 이용자들의 불편을 선택한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페이스북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랬더니 덜컥 페이스북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이 소송에 1심 법원은 페이스북이 법 조항을 잘게 쪼갠 논리를 받아들여줬다. 속도가 느려졌다고 이용을 제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달 중 2심 판결이 예정돼 있다. 2심 판결의 쟁점 역시 이용 지연이 이용 제한이라고 볼 수 있는가, 페이스북이 고의적으로 이용을 지연시켰는가 하는 점이라고 한다.

법 조항 굳이 따지지 않고 일반적 상식으로만 따져봐도 인터넷 서비스에서 이용 지연은 이용 제한이다. 나 부터도 스마트폰 들고 페이스북 접속하느라 몇 십초를 기다려본 일이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판결을 내리는 판사님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세계적 기술회사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를 바꾸면서 이용자들이 불편할 것을 예상히지 못한채 고의성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듯 싶다.

더구나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한 이유가 세계 최고인 한국의 통신망 이용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으니 이 점 또한 인정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반인들의 상식선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2심 판결을 기대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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