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맹탕 재정준칙, 이럴거면 만들 필요 있을까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05 18:11

수정 2020.10.05 18:11

면제·예외로 구멍 숭숭
기재부도 정치권 편승
기획재정부가 5일 재정준칙 도입안을 내놨다. 한마디로 맹탕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재정준칙을 만든다고 법석을 떨 필요가 있을까 싶다. 준칙(準則)은 기준이 될 만한 규칙 또는 법칙을 말한다. 하지만 기재부 안은 말만 준칙일 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오히려 준칙을 우회하는 예외조항을 강조하기 위해 준칙을 이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국가채무비율은 60%, 통합재정수지는 -3%를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넘어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밑돌면 크게 봐서 기준을 충족하는 걸로 간주한다. 또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치면 아예 준칙 적용을 면제한다. 면제 상황은 아니지만 경기둔화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으면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1%포인트 완화한다. 결정적으로 재정준칙은 2025 회계연도부터 적용한다. 문재인정부는 2022년 5월에 임기가 끝난다.

재정준칙은 시안 마련 단계에서 저항에 부닥쳤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깐깐한 내용이 들어가는 걸 꺼렸다. 예산을 더 펑펑 쓰고 싶은데 자칫 준칙이 발목을 잡을까봐서다. 기재부는 이 장벽을 돌파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유연성이란 명분 아래 줄곧 탄력적인 운용 방침을 밝혔다. 준칙에 유연성이란 혹이 붙으면 있으나마나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86조)고 느슨하게 규정한다. 이 법은 노무현정부 때 만들어 2007년부터 시행 중이다. 기재부 재정준칙은 60%, -3%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86조보다 한발 나아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채로운 예외 규정을 두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9%로 추정된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아직 양호한 수치다. 하지만 눈이 어지러울 만큼 빠른 속도가 문제다. 문 정부 3년 만에 8%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2024년엔 58%를 넘어선다. 예산을 쌈짓돈마냥 쓰는 정치권의 행태를 고려하면 60% 초과는 시간문제다.

코로나 위기와 같은 긴급 상황에선 재정을 넉넉하게 풀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올해 추경을 네번씩이나 짰다. 하지만 재정 흥청망청을 언제까지 이어갈 순 없는 노릇이다.
기재부는 나라살림을 책임진 곳이지만 본연의 역할을 포기했다. 눈덩이 나랏빚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에 편승했다.
이래선 어떤 재정준칙을 내놔도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한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