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논단] 국가 R&D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것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2 18:02

수정 2020.10.12 18:01

[fn논단] 국가 R&D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기준으로 2021년 한 해 동안의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는 27조20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 R&D 예산의 기회비용은 얼마나 될까. 우선 정부가 지난 5월 무렵 4인가구 기준 10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을 때 약 14조원이 지출됐다. 즉 내년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포기하면 모든 국민은 지난 5월의 긴급재난지원금 규모 정도를 두 번이나 받을 수 있다. 둘째, 천차만별이기는 한데 GTX 노선 1개의 사업비를 약 5조원이라고 가정하면 국가연구개발사업 1년 치만 포기하면 GTX를 5개나 놓을 수 있다. 셋째, 2020년 국방부 예산 기준으로 간부와 사병을 포함한 총 인건비는 약 14조원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포기하면 그것을 추가 재원으로 60만 국군 장병의 월급을 세 배 가까이 인상할 수 있다.
참고로 2020년 현재 최저임금의 30% 수준에 불과한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에 맞추는 데는 국가연구개발사업 1년 치 예산의 5분의 1도 안 되는 5조원만 추가하면 된다.

그런 기회비용을 가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간을 길게 보면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1964년부터 2020년까지 57년 동안 국가연구개발사업 규모는 2020년 현재 가치 기준으로 385조5000억원(당해년 가격 기준으로는 305조3000억원)이다. 이 중에서 최근 10년 동안(2011~2020년)의 규모가 203조5000억원으로 절반을 넘어선다. 그 정도로 최근 부쩍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예산이 집중되고 있다. 2021년 예산안만 봐도 환경, 국방, 교육 등 12대 분야에서 R&D가 세 번째로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인다. 즉, 금융위기든 코로나든 뭐든 아무리 살림이 쪼들려도 국가연구개발사업만큼은 많은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고 성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사업을 왜 놓지 못하고 있을까. 아무도 자신 있게 그 성과를 이야기할 수 없는 대규모 사업의 재원을 정부가 더 시급하고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데 정부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예산안을 만들지만 결국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것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규모와 방향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놓지 못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그러면 국민은 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포기하지 못할까. 아마도 옛날 소 팔아서 대학 보낸다는 말처럼, 비록 나는 힘들지만 내 후손에게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다른 소모성 정부 지출분야와 달리 국가연구개발사업은 흔히 '공공 R&D 투자'로도 불린다. '투자'라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언젠가 이자가 붙은 원금을 받아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수백조의 투자자금에 대해서 그 투자자인 국민이 투자대리인인 정부 또는 과학기술계에 회계장부를 요구할지 모른다.
만약 회계장부가 없다면 과학기술기본법 제1장 제1조의 내용과 같이, 정부는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해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충분한 노력'은 했는지 물어볼지 모른다. 민사나 상사에서 채권·채무의 시효는 길어야 10년 정도지만, 안타깝게도 '공공 R&D 투자'에 대한 소멸시효는 없다.
먹튀는 어려울 것 같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