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36억이면 시총 36조 현대차 자회사에 '소송공격' [공정경제3법 눈앞, 위기의 기업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8 18:12

수정 2020.10.18 18:40

<1> 다중대표소송제
모기업 지분 0.01% 보유하면
임원에 경영책임 물을수 있어
대주주 사익편취 방지 목적이지만
비상장사까지 3천곳 소송 노출
"헤지펀드 위한 개정안" 비판
36억이면 시총 36조 현대차 자회사에 '소송공격' [공정경제3법 눈앞, 위기의 기업들]

정치권과 재계가 기업규제 3법으로 불리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대해 별다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현실화는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와 거대 여당은 기업규제 3법을 연내 마무리 짓겠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재계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국내 시장은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놀이터가 되고, 기업들은 수조원의 비용을 경영권과 소송 방어에 허비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기업규제 3법이 현실화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 현대차의 지난 16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36조7500억원으로 코스피 7위의 대기업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규제 3법이 통과될 경우 엘리엇과 같은 외국계 자본이 36억원만 투입하면 8개 자회사를 1년 내내 소송으로 괴롭히며 현대차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자산규모가 수십~수백조원에 이르는 대기업들을 몇 억~몇 십억원도 안 되는 자금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말이 언뜻 황당하지만,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다중대표소송제가 통과되면 이런 일들이 현실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즉각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다중대표소송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상장된 모기업 지분 0.01%를 6개월 이상, 비상장은 기간제한 없이 1%만 소유하고 있어도 해당 모기업이 지분 50%를 초과 보유한 자회사 이사에 대해 경영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걸 수 있다. 당초 취지는 대주주의 위법행위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355억원이면 삼성 자회사에 소송


다중대표소송제의 무서운 점은 소액을 들여 모기업 지분을 확보한 뒤 자회사에 대한 줄소송으로 모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상법상 자회사가 있는 상장회사는 1114개다. 이들의 자회사는 총 3250개, 모두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 시총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355억원(16일 종가 기준) 정도면 0.01% 지분 취득이 가능해 7개 자회사를 소송으로 공격할 수 있다.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는 62억원, 네이버는 48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 45억원, LG화학은 45억원, SK텔레콤은 18억원 등 코스피 대형 상장사 중 상당수가 몇 십억원이면 지분 0.01% 보유가 가능하다.

심지어 연결자산 16조원의 롯데지주는 3억원이면 14개 자회사를 소송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 상장협 관계자는 "낮은 가액의 상장사 주식을 사들인 후 자회사에 대한 빈번한 소송을 제기하고, 취하를 빌미로 자신들의 이익을 요구하는 폐해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엘리엇 사태 재발되면 '무방비'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지난 2015년에 있었던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투기자본들이 한국 기업들을 압박할 수단이 크게 늘어난다.

당시 엘리엇은 약 1조원을 들여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한 뒤 7조원의 배당금을 요구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된다면 더 적은 돈으로 자회사에 대한 줄소송까지 제기해 현대차를 괴롭힐 수 있게 된다.

학계에서도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회사에는 자회사의 주주들도 있는데, 모기업 지분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고소할 경우 법인독립 원칙에 어긋난다"며 "소송제기 자격 기준인 0.01%가 낮다고 해도 개인이 취득하기는 어려우니 결국 이는 헤지펀드들을 위한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