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畵音] 보이지 않아 그렸다…들리지 않아 연주했다
[편집자주]노엘라가 화가와 음악가의 작품 및 삶을 비교하는 칼럼 [노엘라의 畵音(화음)]을 8일을 시작으로 <뉴스1>에 격주 화요일마다 연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14세에 도미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임스 버즈웰을 사사했으며,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는 음악과 미술, 문학등을 결합한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서울=뉴스1)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존 브램블리트(John Bramblitt, 1971~)라는 화가가 있다. 1971년생인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2001년, 뇌전증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 죽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친 짓이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니.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밤을 새고 그렸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달려온 새벽, 그의 주방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순간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날 이후 브램블리트는 죽음 대신 예술을 택했다.
브램블리트는 촉감으로 색을 구별한다. 모든 색들은 저마다 고유의 감촉이 있다고 한다. 까만색은 기름처럼 미끄럽고, 하얀색은 치약처럼 두껍다. 그는 색을 섞을 때 느낌을 기억해 자신이 원하는 색을 만든다.
그의 작품 중 '통찰'(perception)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의 주제는 다름아닌 '눈'이다. perception은 인지, 자각, 통찰력을 의미한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세상을 인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눈을 그림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신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이다.
"처음엔 제가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인생은 아무것도 없었죠. 시력을 잃으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끊어집니다. 난 사람들에 난 아직 나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아도 나란 사람은 아직 내 안에 있는 그대로라는 걸요"
브램블리트는 투명한 물감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만짐으로써 자신의 그림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또다시 촉감으로 색을 느끼고 칠한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완성된 이미지가 있다. 그의 눈은 볼 수 없지만 그는 이미 모든 걸 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자기 아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림은 놀라우리만치 실제와 똑같다. 그에게 그림은 소통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의 능력이 변했어도 자신의 능력은 변하지 않았음을 아니 한층 더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눈이 잘 보였을 때,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도전하지 않았다. 그가 시력을 잃게 되자, 잃을 게 없었다. 그가 그림을 못 그린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도전에 성공, 화가가 되었다.
브램블리트가 그림을 촉감으로 보듯 음악을 몸으로 듣는 사람이 있다. TED에도 소개된 청각장애 연주자 겸 작곡가 이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 1965~) 다. 그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연주자가 꿈이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배웠다. 하지만 8세에 청력에 문제가 왔고 12세에는 완전히 청력을 잃었다. 그러나 연주자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진동이 큰 타악기 중 마림바를 선택했다. 글레니는 이제 소리를 만진다. 온몸으로 느낀다. 맨발로 연주하는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리의 진동을 몸으로 듣는다.
처음 그녀가 영국왕립음악원에 입학시험을 보았을 때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하지만 결국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입학은 물론, 최고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상까지 받게 된다. 이후 영국 왕립음악원에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 거부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가 되었다. 50여종이 넘는 타악기를 연주하며 협연은 물론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다. 그녀는 나라로부터 기사작위까지 받았다.
글레니는 말한다.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또 다른 능력의 원천입니다. 장애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에요. 미디어를 통해 미화될 필요도, 오해를 살 필요도 없죠. 침묵의 세계에 갇혀 고통스러울 때, 나를 밖으로 끌어내어 준 것은 바로 음악이었죠."
브램블리트가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온몸으로 소리를 느끼는 글레니. 소리의 진동, 파동을 자신의 몸을 통해 듣는 그녀. 그녀는 "소리의 반대는 침묵이 아니라 정체고, 정체는 곧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몸은 끊임없이 소리를 느낀다. 그럼으로 정체는 소리가 없음이고, 소리가 없는 상태는 불가능 하기에 곧 죽음과 같다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 진정한 침묵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녀는 이러한 느낌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음악은 세상과의 소통이자 그녀를 살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브램블리트는 그림이, 들리지 않는 글레니는 음악이 삶의 끈이며 소통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약점을 최고의 강점으로 이끌어 낸,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 이상으로 승화시킨 이들. 보이지 않아 그림을 그리고 들리지 않아 음악을 연주하는 브램블리트와 글레니. 그들의 삶과 작품을 조사하는 동안 인터뷰를 읽고 동영상을 보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올라와 마음을 추스려야 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흔히들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많이 들어 이제는 식상해진 말. 하지만 브램블리트와 글레니로 이 말은 이제 한층 더 '진리'에 다가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