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서민 궁지로 내모는 최고금리 인하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13 18:00

수정 2020.12.13 18:25

[특별기고] 서민 궁지로 내모는 최고금리 인하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정책이라도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지적하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뜻으로 포장돼 있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정조와 연암 사이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전하, 지금 전국에서 상인들이 한양의 쌀값이 몇 갑절이나 뛰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쌀을 싣고 한양으로 달려오는 길인데, 전하께서 비싼 값에 파는 자를 목을 치신다고 하시니 다들 돌아가지 않겠사옵니까. 그들이 쌀을 싣고 오면 자연히 값은 떨어질 터, 전하께서 정녕 백성들을 굶겨 죽이실 작정이십니까."

한양 쌀값이 폭등하자 쌀값 상한제와 구매량 제한을 시행하고, 쌀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사형에 처해 달라는 한성부윤의 건의를 받아들여 정조가 어명을 내리자 연암 박지원이 반대하며 올린 상소다. 연암의 상소로 정조는 어명을 거두어 백성들의 굶주림이 해결됐다.

'연암의 쌀값'은 비슷한 시기 프랑스혁명 직후 로비에스 피에르의 '우유가격 통제가 불러온 비극'과 대비되는 사례로 회자되는 일화다.

최근 정부·여당이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얼마 전 한 유력 대권후보는 10%로 낮춰야 한다며 국회의원들에게 편지까지 보낸 일도 있었다.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낮추는 훌륭한 정책인데 어느 누가 반대할 일인가. 10%가 더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최고금리 인하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살펴봐야 할 일이다.

우선 지금도 연 24%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서민'이 많다는 점이다. 신용대출의 경우 약 400만명에 이르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는 대부분 은행이나 저축은행의 대출심사 대상에 오르지도 못한다. 은행 등에서 배제돼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곳이 대부업체다.

금융시스템의 마지막 단계인 대부업체에서조차 배제되는 경우 불법사채업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서민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이 거절돼 불법사채를 찾은 이가 최소 12만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금액으로는 최소 2조2000억원에서 최대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왕 최고이자율을 낮출 거라면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대부업체는 은행과 달리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기에 조달비용이 높다.

이는 대출이자에 전가되거나 대출 문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고이자율이 낮아져도 '충분한 공급'을 할 수 있도록 대부업체가 대출원가를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자금조달 방법을 허용하는 조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사실 중앙정부에 등록된 대부업체는 그 규모나 대출시스템이 금융기관에 버금간다. 그러나 연체로 부실이 생겨도 금융기관처럼 세금에서 제대로 공제받지 못한다. 금융감독원이 심사해서 상각처리해 주는 것도 공급을 늘리는 방도가 된다.


긴급한 소액의 경우 연간 이자 몇 %가 문제가 아니라 돈을 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정조에게는 연암이 있어 백성을 구했지만 로비에스 피에르는 '갓난아기도 우유를 먹을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는 경구를 되새길 일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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