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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고기서 고기? … 슬쩍 ‘비건’으로 대체해도 맛난 인생 [먹어주는 얼굴]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7 17:56

수정 2021.06.17 17:56

농심 베지가든
'사골맛 국물’ 떡국 · ‘바삭’ 탕수육에 만두·떡볶이까지
맛집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완자·너비아니·스테이크
"콩이라고? 맛있으니까 상관없어" 쿨한 딸은 한입 더
사는 게 고기서 고기? … 슬쩍 ‘비건’으로 대체해도 맛난 인생 [먹어주는 얼굴]
'먹을 만하다'는 주위의 말을 듣고 나의 '팔랑귀'가 분주히 움직였다. 아주 오래 전 먹어본 비건음식(아마도 불고기였을 거다)에서 콩 비린내를 맡았던 기억이 있어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에겐 투철한 도전정신이 있다.

이웃 포털 검색에서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다. 농심 계열사 태경물산이 만든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이 오늘의 주인공 되시겠다. 농심 로고만 보고 믿음이 갔다. 지난 2017년 시제품을 개발한 이후 채식 커뮤니티와 서울의 유명 채식 전문음식점 셰프들과 메뉴를 연구하고, 소비자 평가를 반복하면서 맛과 품질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베지가든의 공식 쇼핑몰을 찾아 알찬 만두와 매운 떡볶이, 짜장 떡볶이, 떡국, 한 입 완자, 떡갈비, 너비아니, 탕수육, 텐더 스테이크, 함박스테이크까지 닥치는 대로 담았다. 아내가 "전부 살찌는 것만 고른다"고 핀잔을 준다. '식물성 대체육'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 10분이 넘게 강연을 해야 했다.

사는 게 고기서 고기? … 슬쩍 ‘비건’으로 대체해도 맛난 인생 [먹어주는 얼굴]

■아내는 알찬 만두, 딸은 떡볶이 '엄지척'

매운 떡볶이, 짜장 떡볶이, 떡국은 모두 컵라면과 같은 컵간편식이다.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된다. 쌀떡이라 쫄깃하다. 다른 보통의 떡볶이들처럼 그냥 맛있다. 굳이 비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비건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할 거다.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딸아이가 매운 떡볶이를 너무 잘 먹는다. 떡볶이 하나에 물 한 모금을 반복한다. 얼굴에는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평소와 다른 딸의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딸아이는 먼저 매운 떡볶이를 해치운 다음 짜장 떡볶이에 담긴 떡을 매운 떡볶이 소스에 쏟아붓는다. "약간 매운데 이게 더 맛있어." 다시 떡볶이 그릇에 코를 박는다. "짜장 떡볶이도 맛이 괜찮은 데." 외모도, 입맛도 아빠와 멀어져 가는 초등학생 딸이다.

나와 아내는 달랑 하나씩 먹은 후 입맛을 다실 뿐이다. 그러게 최소한 두 개는 담았어야 했다. 맛보기용이라는 이유로 하나만 산 게 후회스럽다. 내 손길은 딸아이의 관심을 받지 못한 떡국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국물에서 사골맛이 느껴진다. 순식물성 원료와 팜유로 이 맛을 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음~ 이것도 좋구만. 떡부터 건져 먹고 밥을 말아야겠다."

자기 밥그릇을 빼앗긴 아내는 알찬 만두로 시선을 옮긴다. "알찬 만두가 만두의 끝판왕이다." 하나를 먹은 아내의 말이다. 지금껏 먹어본 냉동만두 가운데 1·2위를 다툴 만하단다. 향긋한 부추맛과 매콤한 김치맛 두 종류가 있다. 내 입맛에도 투명하고 쫄깃쫄깃한 만두피가 일품이다.

향긋한 부추맛의 속은 양파와 부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로 가득하다. 고기는 없어도 육즙은 있다. 먹어보면 얼마나 맛있는지 안다. 고기 생각은 1도 안 난다. 개인적으로는 100% 비건김치를 넣은 매콤한 김치맛이 낫다. 입에 착~ 하고 감기는 맛이 더 강하다.

한 봉지에 6개밖에 안 들었다는 게 알찬 만두의 유일한 단점이다. 혹시나 해서 알찬 만두는 각각 두 봉지를 샀는데 그야말로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탕수육
탕수육

'바삭 탕수육'은 울퉁불퉁한 여느 중국집의 탕수육과 외모부터 다르다. 올바른 자세를 지니고 있어 보기가 좋다. 튀김 옷이 얇은 데다 두 번 튀겨낸 덕분에 이름 그래도 바삭하다. 새콤달콤한 소스도 '구~뜨'다. 보통의 중국음식점은 파인애플을 많이 쓰던데 이건 토마토 페이스트와 사과식초, 당근, 양파로 맛을 냈다고 한다.

딸아이가 "탕수육은 짜장면이 곁에 있어야 외롭지 않다"는 듣도 보도 못한 논리를 들이댄다.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얘기다. 못 이기는 척하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기왕 짜파게티 끓이려면 서너 개는 돼야지. 냄비 교체하고, 물도 더 부어." 아내가 거들고 나섰다.

맥주 안주를 겸해서 만든 탕수육인데 하나둘 먹다 보니 어느새 전부 사라져버렸다. 맥주는 1인당 달랑 한 캔밖에 안 마셨는데 말이다. 인터넷 후기에 '대용량'을 외치는 목소리가 많은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다음에는 나도 대용량으로 주문할 테다. 결국 안성탕면과 신라면을 부숴서 안주로 삼았다.

궁중 너비아니
궁중 너비아니

■고기와 다른 듯 더 맛있는 스테이크

'고기 아니냐고 그만 물어보세요. 식물성 대체육입니다.' 베지가든 쇼핑몰에서 본 문구다. 기대치가 확 올라간다. 도대체 얼마나 고기와 비슷하고, 또 얼마나 맛있는 걸까. 트랜스지방이나 콜레스테롤도 전혀 함유돼 있지 않다고 하니 많이 먹어도 안심이다.

첫 번째 선택은 '속이 꽉찬 한 입 완자'와 '텐더 스테이크'다. 80g짜리 4개가 든 텐더 스테이크면 충분할 것 같은데 '손이 큰' 아내는 주저 없이 완자까지 프라이팬에 올린다. 텐더 스테이크는 정말 부드럽고 촉촉하다. 데미그라스 소스가 없어도 충분히 맛나다.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전에 먹어본 '콩고기들'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맛보기 만으로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괜찮다"는 말이 연신 터져 나온다. 완자는 물론 뒤에 나오는 너비아니, 함박스테이크마저 제치고 1순위에 오를 만하다.

콩을 싫어하는 딸아이에겐 비밀이다. 굳이 얘기해주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거 같다. 실제로 딸아이는 텐더 스테이크를 잘도 먹는다. '비건이 체질인가' 잠시 (삼겹살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곧바로 지워버렸지만)고민했을 정도다. "맛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더 먹을 수도 있으니 다 먹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완자까지 식탁에 올린 아내의 '빅 픽처'에 감탄할 따름이다.

완자는 서울 마포 공덕시장에서 사먹었던 완자랑 맛도, 식감도 똑같다. 당근, 양파, 부추 등 야채가 풍성하게 박혀 있다. 밥 반찬으로 딱이다. 한 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나의 자그마한 입으로는) 한 입에 먹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이튿날은 '고구마 함박스테이크'가 밥상을 점령했다. 90g짜리 4개다. 그제서야 360g에 810㎉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 함박스테이크와 비교해 열량은 낮은 건 아니다.

'맛난 음식은 질리지 않는 법' '맛있으면 0칼로리'라고 자기최면을 걸어본다. 반을 갈라보니 달콤한 고구마무스가 들었다. 색다른 맛이어서 신선하다. 하지만 단맛이 제법 강한 탓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딸아이에게 '콩으로 만든 고기'라는 사실을 알렸다. "평소 먹는 고기보다 건강한 맛"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딸아이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맛있으니까 뭐. 상관없어"라면서 함박스테이크로 젓가락을 옮긴다.

떡갈비
떡갈비

아무리 일이라지만 사흘 연속은 무리다. 눈치 빠른 아내가 쌈을 준비했다. 입맛이 스멀스멀 다시 살아난다. '숯불향 그윽한 궁중너비아니'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깻잎, 상추에 올리고 청양고추와 쌈장을 곁들였다. 야채와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느끼함이 없어서 너무 좋다. 이런 '맛있는' 맛이라면 밥 한 공기는 순삭이다. 너비아니의 양이 많아서 다른 반찬은 손에 댈 기회조차 없다. 쌈의 강렬함 때문에 너비아니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접어두기로 한다. 솔직히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식감 등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정성껏 치댄 떡갈비와 맛있는 양념의 조화'는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한다.
입맛에도 적절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내 입맛은 결코 길들여질 수 없다.
마지막까지 남겨뒀던 '숯불향 떡갈비'는 당분간 냉장고 신세를 더 져야겠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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