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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집단민원조정법 제정을 고대하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18 18:05

수정 2021.07.18 18:05

[차관칼럼] 집단민원조정법 제정을 고대하며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이곳은 '펀치볼'로 불리는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아직도 현대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 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었으나 1953년 정전협정으로 남한에 속하게 됐고, 주민의 80%가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무주지(無主地)가 됐다.

이후 정부는 1956년과 1972년에 260세대, 1394명을 해안면으로 정책이주시키면서 "10년 동안 경작하면 소유권을 준다"는 구두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정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주민들은 언제 생활터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이에 530여명의 해안면 주민은 정부가 약속한 대로 토지 소유권을 갖게 해달라는 집단민원을 2017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3년여 동안 해결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한 끝에 지난해 관계기관으로부터 특별조치법 개정과 낙후된 해안면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해안면 주민들은 70여년 만에 정부가 약속했던 대로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까. 그 원인은 일반민원과는 다른 집단민원의 특성에 있다.

우선 집단민원은 법·규정 위반 여부를 떠나 국민과 행정기관 간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잘 조정해 국민과 행정기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해관계 조정은 전문성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과 노력, 관심이 필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해안면 주민들의 집단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수십 차례나 현장을 찾아 주민들, 관계기관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는 점이 이런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둘째로 관련된 기관이 많다는 점이다. 해안면 사례처럼 양구군은 물론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 많은 기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기관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셋째로 대부분 행정기관이 집단민원 전담 조직과 인력, 전문적 처리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집단민원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 전문인력 부족 등은 국민권익위원회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더 큰 문제는 해안면 사례처럼 장기간 표류하는 미해결 집단민원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 한 해만 전국적으로 7000여건의 집단민원이 발생했다. 앞으로도 장기화되는 집단민원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는 심각한 국민권익 침해와 정부에 대한 불신, 국가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 민간연구소는 사회적 갈등으로 낭비되는 비용이 한 해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단민원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식과 시스템을 하루라도 빨리 갖춰야 한다. 다행히 최근 집단민원조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계류 중이다. 법안은 행정기관이 집단민원 조정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해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집단민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민간 전문가도 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전문성을 높였다.
작년 한 해만 1000만건 가까운 민원이 국민신문고에 접수됐다. 이 중에도 빨리 해결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집단민원이 점점 쌓여 가고 있다.
법안이 하루빨리 제정돼 집단민원 해결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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