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거주지가 아파트인 우리나라는 어떤가. 단지 내에는 놀이터와 체육시설이 있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나누고 싶은 무엇을 들고 나와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은 없다. 조성된 상가 주변에서 주민장터라도 열었다가는 각종 민원이 빗발쳐 채 반나절도 버티기 어려울 게다. 아주 오래전 동네 꼬마들이 모여 하던 축구, 야구는 진작에 사라졌다. 주택가 도로에는 차가 더 많고 눈을 들면 학원 간판이 빼곡하다. 놀이도 전문적인 강습을 통해 유명세와 고액연봉이 따르는 프로선수가 될 것을 목표로 하는 공부가 되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 유명 학원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던 차가 뒤엉겨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고 나서야 제 속도로 달리며 문득 2년째 줌으로 만나고 있는 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 화면 앞에 앉았을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어떤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거나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2009년, 영화 '아바타'가 보여준 것은 육체가 처한 물리적 한계를 넘나들지만 주인공이 의지한 대로 움직이는 부캐였다. 2021년, 발전한 기술은 보다 젊고 아름다우며 개성이 살아 있는 내 아바타를 만들어냈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메타버스 드라마 제작을 시도하는 지금, 학자들의 주장처럼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감각이 작용하는 디지털 세상까지 구현된다면 학생들이 설 무대는 어디가 될 것인가.
마이애미로 날아 간 쿠바인들은 부모가 살아온 것과 다르게, 자식들이 꿈을 이루며 살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즐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취직이 꿈이 되었고,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아이들. 일상에서나 온라인에서나 주변의 희망에 맞춰 사느라 쌓인 압박을 풀어낼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 이들에게 어디서나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잠시 숨 돌리며 상상하라 말하고 싶다. 이어폰을 빼고 극장 객석에 앉아 음악에 취해 보는 것도 좋다. 거리에서 춤을 만나면 함께 몸을 흔들어 보라.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주변에 손을 내밀어보자. 나도 누군가에게 참 좋은 사람이 되어 가슴 벅찰 수 있다.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은 우리의 문화를 담은 누군가의 꿈이었다. '취직'은 수단일 뿐, 지난 2년이 보여주었듯 급변할 세상에서는 '상상이 만든 꿈'이 바로 우리의 무대가 될 것이다.
김신아 양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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