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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에 대구 유공자들 명예회복하나

뉴시스

기사내용 요약
"수많은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도 절게 돼…후회하지는 않아"
검찰 "정히 처리·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재판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선고는 5월18일 오후에 진행하겠다"

【서울=뉴시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를 "한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기억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서울=뉴시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를 "한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기억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대구=뉴시스] 김정화 기자 = 광주민주화운동 실상을 대구지역에 알리려다 간첩단으로 몰려 유죄를 선고받은 5.18 민주화 유공자들의 재심 선고가 제42주년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이뤄질 전망이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상오)는 20일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사망한 A(69)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공소사실에 대해 변호인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나 범죄가 아니다"며 "재심 청구서에 기재된 것과 같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증거 조사를 해야 하는 데 검찰에서 특별히 제출할 증거자료가 있나"고 묻자 검찰은 "특별히 없다"고 답했다.

공판을 마치며 검찰은 "정히 처리·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의견진술 했다.

피고인들 대표로 최후 진술에 나선 한 민주화 유공자 B씨는 "1980년 9월19일 두레서점 앞에서 사법 경찰 3명에 의해 불법 연행됐다"며 "경북도경 대공분실 안가에서 물고문, 구타, 허벅지 사이 각목을 끼워 밟고 올라서기 등 수많은 고문으로 간첩단 사건의 중책인 학생 운동 담당을 시인하는 갖은 협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5·18 유인물 제작 배포 및 시위를 주도했고 불온서적을 복사해 전달한 죄를 물으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으며 고문을 당했다"며 "반공법의 꼬리표가 붙어 10년간 요주인물로 감시 대상이 됐고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도 절게 됐지만 지난 젊은 날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조금이나마 민주화된 사회로 거듭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평생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진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는) 역사인 것이다"고 했다. 선고날짜를 잠시 고민하던 재판부는 "원래 선고는 이날 하지 않지만 5월18일 오후에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중순 대구 일원에서 광주 5·18 항쟁 관련 공수부대 민간인 학살 등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되자 대구에서는 두레 양서조합원을 중심으로 지역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광주지역의 뜻에 동참하며 군사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같은 달 27일 종료되자 이들의 행동 또한 종료됐다.

같은 해 6월부터 배후 수사를 진행한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간첩 조작사건인 '대구 두레사건'을 3개월 뒤인 9월 표면화시켰다. 초기에는 반국가단체 결성의 간첩단 사건으로 몰아간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연루된 100여명이 불법 구금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가톨릭 농민회와 천주교 신자들도 다수 연루되자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과 만나 담판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선고는 42주년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다음 달 18일 오후 1시5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k@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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