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을지면옥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27 18:14

수정 2022.06.27 18:14

영업 종료 직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뉴스1
영업 종료 직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뉴스1
37년 동안 냉면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서울 을지면옥이 지난 25일 오후 37년 만에 영업을 종료했다. 을지면옥이 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은 2019년부터 재개발 절차가 진행됐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이 건물을 시행사에 인도하라고 명령해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을지면옥에서 평양냉면을 즐기고는 바로 옆 을지다방을 찾아 옛날식 다방 커피를 마시던 식도락 코스는 이제 영영 사라졌다.
을지면옥의 뿌리는 1·4후퇴 때 월남한 김경필씨 부부가 1969년 경기 연천에 개업한 '의정부 평양냉면'이다. 김씨 부부의 첫째 딸이 독립해 '필동면옥'(필동)을 개업했고, 1985년 둘째 딸이 연 가게가 을지면옥이다. 아들은 의정부 본점을, 셋째 딸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본가평양면옥'을 운영하고 있다.

을지면옥의 육수 맛을 다소 '밍밍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작가는 '시원하게 심장을 관통하는 맛'이라며 첫손가락에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 옥류관에서 먹었던 평양냉면과 가장 맛이 비슷하다며 을지면옥을 자주 찾았다. 방탄소년단의 RM도 소식을 듣고 인스타그램에 속상한 마음을 올렸다.

을지면옥과 함께 '강서면옥'(서소문동), '남포면옥'(다동), '만포면옥'(갈현동), '봉피양'(방이동), '우래옥'(주교동), '을밀대'(염리동) 등은 서울의 '3대 면옥' 또는 '5대 천왕'에서 이름이 빠지면 섭섭해할 냉면 명가(名家)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포면옥을 자주 들렀고, 강서면옥 냉면을 청와대로 배달시켜 먹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참석차 서울에 온 북측 대표단이 냉면을 먹은 곳도 강서면옥이다.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은 을밀대의 단골손님이었다.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는 남포면옥은 문재인·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 을지면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른 시일 안에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서 가게를 다시 연다고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