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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러 흑해곡물협정 중단, 물가 리스크 대비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18 18:20

수정 2023.07.18 18:20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막혀
국내 곡물가격도 요동칠듯
지난 2022년 8월9일 우크라이나 즈후리브카 마을에서 밀이 수확되고 있다. 러시아는 17일 우크라이나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국가들로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22년 8월9일 우크라이나 즈후리브카 마을에서 밀이 수확되고 있다. 러시아는 17일 우크라이나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국가들로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러시아의 '몽니'가 결국 전 세계 식탁물가를 흔들어놓을 태세다.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보장해온 흑해곡물협정이 러시아의 연장 거부로 17일(현지시간) 만료됐다.
러시아의 연장 거부에 전 세계의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곡물 가격이 치솟아 양국이 흑해곡물협정을 체결했고, 지금까지 3차례 연장한 바 있다. 그런데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가 공격받은 직후 러시아의 연장 거부가 발표됐다. 러시아의 보복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흑해곡물협정의 완전 종료가 미칠 후폭풍은 간단치 않다. 전 세계 곡물공급에 차질을 미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안정세이던 물가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흑해곡물협정이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전 세계 식량부족 사태가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통에도 흑해곡물협정 덕분에 곡물 약 3300만t을 전 세계에 수출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전인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보리 3위, 옥수수 4위, 밀 5위 수출국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곡물의 95%를 오데사 등 흑해 연안 항구를 통해 수출했다. 그런데 이번 협정 만료 소식에 최근 안정세를 보이던 세계 곡물 가격이 재반등했다. 곡물 가격 상승은 곧이어 주요 식품 가격에 반영될 게 뻔하다. 인플레이션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양국 간 협정 체결 직전인 지난해 6월 세계 밀과 옥수수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56.5%, 15.7% 급등한 바 있다.

인도주의적 원조가 막히는 최악의 사태도 우려된다. 우크라이나에서 수출하는 곡물 가운데 적지 않은 물량이 기아에 허덕이는 최빈국으로 간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3분의 2는 중간소득 국가로 가고 일부는 아프가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등 기아 직전에 있는 국가로 향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흑해곡물협정 중단의 파장을 심각하게 걱정할 때다. 정부는 최근 국내 물가 수준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 경제정책을 펼치려는 상황이다. 국내의 내수시장이 침체된 데다 성장률 전망치도 낮아 경기를 진작시키는 데 힘을 보태려는 것이다. 그런데 흑해곡물협정 중단이 장기화된다면 물가가 요동칠 수 있다. 물가 대신 성장을 선택한 경제 기조가 흔들린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노선 변경 없이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다만 물가관리에 관한 한 최소 두 가지 플랜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곡물수입처 다변화를 포함한 대비책 마련이다.
물론 러시아가 태도를 바꿔 협정 연장에 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곡물 가격은 불확실성 그 자체로 다뤄야 한다.
아울러 원재료 값 상승심리에 기댄 채 가격인상을 부추기는 매점매석 행위도 집중 관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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