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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사고 등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 땐 CEO까지 문책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추진]

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1 18:19

수정 2023.09.11 18:28

윤한홍 의원 개정안 대표 발의
이사회 내부통제위 신설 포함
개별임원 '책무구조도' 도입
횡령 사고 등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 땐 CEO까지 문책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추진]
BNK경남은행 1400억원대 횡령사건(피해금액은 400억원대 추산)을 비롯해 금융권에서 내부통제 실패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집권여당에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입법화에 나섰다. 이사회 내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해 이사회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에 대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최종 책임을 묻는 게 핵심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분주해진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최대 4~5개월이 걸리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을 택한 것으로, 연내 통과가 가능할지 주목된다.

11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여당 정무위원회 간사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 내용은 지난 6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과 일맥상통한다.

핵심은 CEO를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 해서 권한과 책임을 모두 명시한 것이다.
CEO는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임원의 통제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를 가진다. 현행법에는 시스템 마련 의무만 있었는데 관리의무를 추가했다.

구체적으로 CEO는 각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를 작성해야 한다. 임원들은 책무구조도에 따라 자신의 책임범위 안에서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지도록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준수 여부 등을 상시 점검할 의무를 가진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각사의 특성과 경영여건 변화에 맞게 작성하되, 이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사회의 내부통제 역할도 강화된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 관련 사항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내부통제체계 운영 전반의 적정성을 점검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CEO에 대한 제재도 가능해진다. 반복적·조직적으로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적 실패'에 대해서는 CEO가 책임져야 한다. 관리의무를 위반한 업무집행책임자에 대해서는 면직, 정직 등 신분제재를 부과한다. '금융계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다만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한 경우 책임을 경감 또는 면책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사전적·객관적으로 예측가능한 정도의 관리조치를 했는지가 '상당한 주의'의 판단기준이 된다. 금융회사 스스로 책무구조도를 마련하고, CEO가 관리감독 의무를 충실히 했을 경우에는 감경하는 내용도 포함돼 '처벌보다는 예방'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도 있다.

법안 발의자와 시기도 주목할 지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이 같은 내용의 내부통제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두 달 넘게 입법화가 안 됐었다.

BNK경남은행 횡령사건을 비롯해 KB국민은행 미공개정보 활용 주식거래, DGB대구은행 위법 계좌개설 혐의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여론이 재점화됐다. 그간 CEO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자체적 내부통제 강화를 주장해왔던 여권에서도 빠른 제도개선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할 경우 조문 작업부터 법제처 심의까지 의원입법보다 최대 수개월이 더 걸린다. 반면 의원실에서 법안을 낼 때는 10명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돼서 절차가 훨씬 간단하다. 연내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의원입법이 효율적이라는 정부·여당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윤한홍 의원은 "계속되는 금융사고로 금융권의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했고 국민 피해는 극심한 상황"이라며 "이번 개정안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제도개선으로 이어져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근절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개인 일탈의 책임을 CEO, 이사회에까지 묻는 건 과도하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수만명 직원 중 1~2명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리 책임을 최고경영자에게 묻는게 온당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사고가 잇따르는 이유는 아직까지 디지털화할 수 없는 영역의 업무를 사람이 맡아서 하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를 은행이나 CEO가 전부 책임질 수 없는데도 그렇게 만드는 방향인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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