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숨어드는 '여성 노숙인'...시설은 답답했고, 거리는 위험했다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③]

김수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8 09:46

수정 2024.01.18 09:46

<③성추행·협박에.. 쉴곳 없는 女노숙인>
노숙자 10명 중 3명은 여성...5년 사이 '2배'
정부, 여성노숙인 위한 종합지원센터 운영
전문가들 "노숙인 진입 단계부터 개입해야"
노숙인 시설인 '은혜의집'에서 생활하는 한 여성 노숙인이 의자에 앉아있다./사진=김수연 기자
노숙인 시설인 '은혜의집'에서 생활하는 한 여성 노숙인이 의자에 앉아있다./사진=김수연 기자
[편집자주]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것 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파이낸셜뉴스는 신년 기획으로 일상 뒷편에 숨겨진 문제들을 연속 보도합니다. 이는 사회에 전하는 일종의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파이낸셜뉴스] "저리 가, 저리 가!"

영하의 추위 속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분주한 발걸음 속 서울역 광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텐트들이 유독 눈에 띈다. 그중 끝자락에 위치한 텐트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텐트 속에 한 여성이 보였다. 인기척을 내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한 여성 노숙인 A씨.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두려움에 목소리를 떨며 경계의 눈초리로 자신을 지키려는 듯 소리쳤다.

서울역 한구석에 있는 텐트 안에 거리 노숙인들이 살고 있다. /사진=김수연 기자
서울역 한구석에 있는 텐트 안에 거리 노숙인들이 살고 있다. /사진=김수연 기자

A씨의 고함에 놀라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던 중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역에서 6년째 노숙중인 박씨(55)를 만났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청한다는 박씨는 서울역 노숙인들의 생활에 대해 설명해 줬다.

"우리는 오후 6시께 보통 잠을 자러 들어가고, 오전 4시30분께 하루를 시작해요. 서울역 지하도는 크게 3곳에서 노숙인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 구역에서는 남자 29명, 여자 2명이 생활하고 있어요."
다가서면 강한 경계…거리 위 '여성 노숙인' 실태는

서울역 앞에서 50년간 노점상을 운영하며 많은 노숙인들을 지켜봤다는 B씨(85). B씨는 여성 노숙인들보다 남성 노숙인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고 전했다.

"여기에(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중에 여자는 한 10% 되려나? 남자가 더 많지. 20대, 30대고 있고 50~60대도 있어. 주로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술 주고 같이 마시다가 남자랑 여자랑 같이 손잡고 어디 가고 그러더라고"

1984년 보육원을 나와 그 뒤로 노숙생활을 했다는 장모 씨(54)는 여성 노숙인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장씨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10명 중 1~2명만 여성"이라며 "여자들이 계단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 남성들이 '돈 얼마 줄게'하면서 데리고 간다. 나이 30정도 되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가 그렇게 애를 낳았는데, 그 남자랑 여전히 같이 어울리긴 한다. 부부는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실제 서울역에서 여성 노숙인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모두 경계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큰듯했다.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들이 추운 날씨 속에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사진=김수연 기자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들이 추운 날씨 속에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사진=김수연 기자
"숨어있던 여성 노숙인 발굴" 정부, 전담 조직 운영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2년 4월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8956명에 달한다. 이중 여성 노숙인은 2493명으로 전체 노숙인의 27.8%를 차지한다. 2016년 대비 전체 노숙인의 규모는 2348명 감소했으나 거리를 배회하는 여성 노숙인은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여성 노숙인에 대한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2023 여성 거리 노숙인 전담조직 구성·운영 사업 수행기관' 공모를 했다. 그 결과 '서울특별시립브릿지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가 최종 선정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존 노숙인 시설의 경우 남성 위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별도로 여성을 만들어 여성들만 특화해서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여성 거리 노숙인 전담조직 구성·운영 사업수행기관 공모를 낸) 최초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지난해 여성 거리 노숙인 전담조사를 운영한 결과 총 128명의 여성 거리 노숙인을 발굴했다. 그중 16명의 주거 지원을 지원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 주거나 병원 입원 및 시설 입소 연계 등을 도왔다. 가족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 사례도 한 두건 정도 있다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센터 측은 지원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여성 노숙인들이 센터에 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숨어 있던 여성 노숙인들이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와서 도움을 요청했다"며 "지난 2022년에 저희가 관리하던 노숙인이 66명이었는데, 2023년엔 128명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여성 노숙인 사업을 통해서 그렇게 조금씩 밖으로 나오는 분들이 생긴다는 부분을 여성 거리 노숙인 전담 센터 운영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보를 많이 해서 찜질방이나 PC방, 공원 등에 계신 분들이 밖으로 나와서 지원을 받게 해야 한다. 우선은 많이 노출돼야 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노숙인) 숫자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이후 그분들이 직원의 행정적 서비스나 취업 지원 서비스를 통해 취업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노숙인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센터에 따르면 거리로 나온 여성 노숙인의 수는 통계에 잡힌 것보다 더욱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계자는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의 여성 거리 노숙인의 숫자는 통계적으로 128명이나 실제론 그보다 저 많다고 추정하고 있다"며 "여성 노숙인 같은 경우에는 PC방이나 찜질방, 여관 등에 숨어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여성 노숙인의 수는 더 많다고 추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소 거부도 많아…정신질환 노숙인 살펴봐야

한 노숙인이 서울역 앞에 추위에 떨고 있다. /뉴시스
한 노숙인이 서울역 앞에 추위에 떨고 있다. /뉴시스

다만 시설이나 쪽방촌 등의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들도 있다.

김명동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정책위원장은 "시설에 입소하시는 분들 중 본인의 의지로 오시는 경우는 드물다"며 "지구대나 행정복지센터, 구청 등을 통해 입소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 노숙인의 경우 대부분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 거리로 나오는 여성 노숙인의 경우 심신미약인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노숙인들 중 여성이(42.1%) 남성(15.8%) 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이들에게 치료 경험을 물어본 결과 재활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의 97%가 치료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요양시설(92.8%), 자활시설(91.6%) 등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거리 노숙인의 경우 27.4%만 치료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즉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에 비해 거리 노숙인에 대한 정신질환 지원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또 시설 노숙인의 52.2%가 등록 장애인으로 파악됐으며, 이들 중 지적장애가 21.2%로 가장 많았고, 정신장애(21.8%)가 그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노숙인의 정신 건강 문제가 적절히 개입되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센터 관계자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기 시작하면 노숙하는 비율이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입을 하고 있지만 현재 노숙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졌으나 그분들이 거부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생활 규칙 적응 못해 시설 입소 꺼리기도

그렇다면 노숙인들이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센터 관계자는 "병원은 답답하고, 술도 마실 수 없고, 담배도 못 핀다. 병원이라는 환경이 그렇다.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규칙이라는 게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소장은 "시설에 들어와도 단체 규율이라는 건 별로 없다. 저희 같은 경우엔 출입이 자유롭고 외출했다가 밤 11시까지 들어오면 된다. 방을 혼자 쓰는 게 아니고 같이 쓰는데, 저희는 2인 1실이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불편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 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공동생활을 원치 않은 분들에게 지역사회 자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주택을 많이 늘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거 취약계층에 갈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등이 늘어나면 굳이 서울에서 생활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역사회로 갈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하는 게 힘든데 사실 선택지가 시설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주택정책이 있긴 하다.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은 지원주택이라는 것이 있고, 건강하고 일을 할 수 있는 분들을 위한 주거 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이라는 주택이 있는데, 그 주택 수가 지금 많이 줄었다"고 부연했다.

서 소장은 "주거 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의 경우 신규 공급이 거의 많이 줄었는데, 지원 주택은 2022년 40~50호 정도 공급했다면 2023년에는 30호 밖에 공급이 되지 않았다"며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매입임대주택이라든가 지원주택 등을 꾸준하게 확대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핵심이다. 시설이 싫으면 방법은 주택밖에 없다. 그런 분들의 욕구에 맞는 주택과 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분들이 거리에서 겪게 되는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20~30년 전부터 주택 지원 사업들을 해왔다. 우리는 후발주자다. 말하자면 그런 정책들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고 부연했다.

"노숙인 진입 초기 단계, 적극적으로 개입" 전담 인력 확충해야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전문가들은 전담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지속적인 실태 조사를 통해 관련 제도를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센터 관계자는 "초기 진입 상태(노숙인) 개입이 필요하다.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위생이나 건강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담 인력을 늘려야 한다. 현재 저희 센터에 전담 인력이 2명인데, 그분들이 6~7개 자치구를 돌아가면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행정적인 측면이 뒷받침되면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소장도 전담 인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복지부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노숙인 자립을 지원하는 소규모 생활시설의 경우 전담 인력 부족으로 자립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험 같은 경우 중첩될수록 휠씬 더 위기가 커진다. 여성이라는 점도 취약하고 노숙인이라는 것도 취약하기 때문에 훨씬 위험이 커지기 마련"이라며 "이분들을 가능하면 시설에 입소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원과 행정입원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여성 노인 같은 경우 위험이 훨씬 더 중첩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숙인 시설이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나이가 있는 노인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지원을 받아 시설로 연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그런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해 발전시켰으면 한다"고 전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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