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트럼프 한달]"싫지만 맞서긴 힘들다"…각국 저자세 협상모드

뉴스1

입력 2025.02.19 06:03

수정 2025.02.19 06:03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오는 20일로 한 달을 맞는다. 트럼프는 미국의 사회적, 정치적 규범과 경제를 재정비하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재정의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와 강력한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

1기 때보다 더 강력해진 트럼프의 질주에 각국은 분노와 충격을 표현하면서도 이에 대항할 조직적인 움직임을 꾀할 여유조차 없다. 정치와 외교·안보, 경제 등 다방면에서 조여오는 트럼프의 파상공세에 조금이라도 자국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자세를 낮추고 트럼프의 요구에 반응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관세 도발에도 '보복' 생각 못하는 각국…트럼프 회유 우선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인접 동맹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최대 소비시장의 힘을 배경 삼아 각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국가별, 품목별 관세 등을 퍼부으며 상대국에 자신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전략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전 제품에 25%의 관세 부과를 결정한 트럼프에 맞대응을 시사하며 반발했지만 결국 트럼프가 문제 삼은 국경지대 불법 이민 및 마약 단속 강화를 약속하고 30일 유예를 얻어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어지는 철강 및 알루미늄 25% 관세, 각국을 상대로 한 상호관세 발표 등 일련의 선전포고에 각국은 일제히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 나서며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협상 움직임이 가시화하지 않은 주요 국가는 중국 정도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미국 제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미국의 공격에 비하면 소극적인 반발이다.

협상에 나선 각국은 트럼프에 맞추느라 분주하다. 선물보따리 핵심은 미국산 제품 구입이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일인 13일 백악관을 찾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와 회담에서 F-35 전투기 등 미국 무기 구입과 원전 도입 등을 논의했다. 이보다 일찍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트럼프와 만나 대미 투자 금액을 1조 달러로 확대하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가 반대하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서도 인수가 아닌 투자로 물러섰다.

대만 역시 대규모 미국 무기 구입을 검토하는 등 각국은 대항보다는 수용을 택했다. 유럽연합(EU)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조차 지난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더니 강경한 입장 대신 "에너지를 포함한 상호 이익 분야에 경제적 우선순위를 두겠다"며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각국의 저자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불분명하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BBC에 "트럼프와 협력하려는 교섭이 이뤄질 수 있지만, 관세가 너무 빠르고 맹렬해 협상이 지속가능한 옵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며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은 단기적으로 회유를 추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격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美 압박에 방위력 증강·파병 검토하는 유럽…가자지구도 반응

전쟁이나 외교·안보, 정치 분야에서도 각국은 각자의 방식대로 트럼프의 일방통행에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3년을 맞은 전쟁은 일대 변곡점을 만났다. 미·러 주도의 협상에서 '패싱' 우려에 빠진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은 비상에 걸렸다.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종전 논의 관련 사항을 논의했는데, 국방비 확대를 통한 유럽 자체 방위력 증강에 뜻을 모았다. 트럼프가 유럽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줄곧 압박해 온 사안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종전 후 우크라이나 파병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역시 트럼프의 요구사항이다.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맡으라"는 얘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복귀를 전기충격 요법에 비유하며 유럽이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정책 개혁을 가속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자성했다.

또한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정정파 하마스가 휴전을 진행 중인 가자지구에서도 폭탄을 터트려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갈 태세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키고,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휴양지로 재건하겠다는 구상으로 중동을 발칵 뒤집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수립을 의미하는 기존 '두 국가 해법'과 더욱 멀어지는 구상이지만, 이 역시 트럼프의 속셈대로 '충격 요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랍 등 관련국들이 트럼프의 폭력적 계획에 놀라 가자지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대안 모색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집트는 현재 가자지구 재건에 대한 자체적인 전후 계획을 수립 중이며 오는 27일 사우디에서 열리는 아랍정상회의에서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이 대안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자지구 주거권을 보장하면서 하마스의 통치를 배제하는 쪽으로 검토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