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도엽 김근욱 기자 = 지난 2019~2020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을 통해 아파트를 매수한 사례가 많은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의 경매 건수는 폭증했다.
당시 2%대 저금리로 수억 원의 대출을 받은 '영끌족'이 많았는데 대출 갱신 시점이 다가오며 4~5%대로 금리가 뛰자 이자를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영향이다. 소득 수준을 넘는 무리한 대출이 결국 고금리 유탄으로 돌아온 셈이다.
29일 뉴스1이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지난해 노·도·강 내 아파트의 경매 건수를 의뢰한 결과, 해당 기간 총 657건의 경매가 진행됐다. 5년 전인 지난 2019년 170건 대비 4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경매건수도 무려 3.18배(1064건→3386건) 늘어났는데, 노·도·강의 증가 폭은 이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노·도·강은 '영끌족'의 성지로도 불린다.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폭등기' 시절, 상대적으로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노·도·강에 1인 가구, 신혼부부, 갭투자(전세 낀 대출)까지 대거 몰렸다. 코로나19 여파에 '역대급 저금리' 시기까지 겹치자, 시장에 대거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주식·가상자산 시장으로 흘러간 영향이다.
당시 매물을 보지도 않고 매수하기만 해도 가격이 올랐다는 투자 성공 사례가 시장에 흘러넘치자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 '포모증후군(Fearing Of Missing Out·FOMO)'이 휩쓸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노·도·강 내 아파트 거래 건수는 1만 3398건이었으며, 2020년엔 무려 2만 1513건에 달했다. 지난해 7440건 거래된 것과 달리 2~3배 많았다.
다만 당시 '아파트 가격 고점'에 2% 중반대 '5년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은 영끌족은 고금리 유탄을 맞고 있다. 혼합형은 5년간 고정금리를 적용한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상품인데, 5년 만에 금리가 2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20년 5억 원(30년 만기·원리금 균등상환)을 빌렸을 경우 현재 변동형으로 전환되면 '월 납입액 70만 원(연 84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 신규취급액 기준 주담대 고정형 대출금리는 지난 2020년 2월 기준 2.47%며, 지난 2월 변동형 대출금리는 4.25%다. 지난 2020년 당시 2% 중반대로 대출을 받은 차주가 5년 뒤인 지난 2월 변동형으로 전환되면 단숨에 금리가 4%로 뛴 영향이다. '영끌'로 대출받았을 경우, 현재 변동형 전환 이후로는 원리금도 갚기 힘들어지는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팀장은 "당시 부모 세대보다 저자산·저소득인 입장인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는 조급함이 있었고, 1금융권을 넘어서서 무리한 대출을 받은 사례들도 분명히 있었다"며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 버틸 수 있는 대출에 더 신중하게 접근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원리금을 갚지 못하자, 경매로 넘어간 아파트 수는 폭증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부동산 폭등기인 지난 2020년, 2021년 노·도·강 아파트 경매 건수는 각 83건, 48건에 불과했다. 다만 아파트 고점에 대한 우려가 생기기 시작하고 '기준금리 상승 곡선'에 접어든 2022년엔 114건으로 뛰더니 2023년엔 313건으로 폭증했다.
실제로 노·도·강 경매 신청 건수는 대부분 '은행 신청'에 따라 진행됐다. 영끌족이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선순위권자인 은행이 아파트를 경매에 넘기며 원금 회수에 나선 것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노·도·강 내) 경매 신청 건수 중 세입자가 신청하거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신청한 건은 거의 없다"며 "갭투자로 인한 역전세에 따른 경매 신청보다 '영끌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노·도·강 아파트 가격은 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차익 실현이 힘들기 때문에, 영끌족이 매물 보유를 유지하며 '울며 겨자 먹기식'의 고금리 이자 납부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0년에 아파트를 매수했다면 현재 가격은 더 떨어진 상태기도 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월 노·도·강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2021년 6월 100% 기준)는 90.41~93.19%다. 반면 지난 1월 매매가격지수는 86.04~90.17%로 더 내려갔다.
설상가상으로 은행권이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하며,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 심화하자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상급지 중심으로 수요가 쏠리며 노·도·강 등 외곽 지역의 가격 회복세가 더디기도 하다. 이에 원금을 갚지 못해 나오는 경매 매물이 올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KB금융지주 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25년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노·도·강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 고점 대비 10% 넘게 밑돌았다. 노원(-17.2%), 도봉(-19.0%), 강북(-13.3%) 등이다. 서울 내 25개 자치구 중 뒤에서 1~3위다.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노·도·강 아파트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의 경우 지난 2019년 당시에는 월별로 92.7~103.7%에 달해 감정가 수준으로 매각됐으나, 지난해에는 78.2~89.5%로 적게는 10%, 많게는 20% 넘게 가격이 하락해 매각됐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코로나19 당시 저리대출을 이용한 차주의 금리 인상과 최근 저조한 집값 흐름으로 이자 상환을 하지 못하는 가구의 경매 처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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