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투자 없이는 인재 탈출 못 막아
연구개발 예산 아낌없이 확충해야
연구개발 예산 아낌없이 확충해야
내년 예산안은 미중 무역갈등의 불씨가 여전하고, 국가 간 기술전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운데 편성됐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으로 관세와 희토류 수급 문제가 일부 진정됐지만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런 기술 격변기에는 국가의 전략적 대응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나랏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무역과 기술 전쟁의 최전선에 선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 예산안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연구개발(R&D) 투자다. 약 35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독자적 AI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먹거리인 전략기술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다.
R&D 예산은 단순히 지난 정부에서 줄었던 규모를 복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집행돼야 한다.
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인재 없이 기술 주도 성장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금 한국이 고급인재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유출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21년 1만8000명으로, 10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학위 취득 10년 차 기준 국내 인력의 연봉은 해외 인력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처럼 처우가 뒤처지는 한 두뇌유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애국심만으로 우수인재를 붙잡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연봉과 근무여건을 과감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초격차 기술인재 유치는 공허한 구호가 될 우려가 크다.
내년 인력양성 예산으로 1조3000억원이 반영됐지만 초격차 경쟁을 주도할 인재를 확보하기에 충분한 수준인지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내년 예산은 한국을 'AI 3강' 기술강국으로 향하게 할 마중물이 돼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나라살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연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부담은 더 커진다. 이런 상황일수록 여야는 예산안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놓고 정파를 넘어선 협력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의 시선은 내년 지방선거에 쏠려 있는 듯하다. 선심성 사업과 지역개발 예산에만 관심을 두고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재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소모적 정쟁으로 나라살림이 또다시 누더기가 된다면 민심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