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비명 없는 생산, 침묵하는 소비… '펫숍'의 불편한 진실 [강아지 공장 잔혹사②]

한승곤 기자,

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2 11:00

수정 2025.12.12 20:57

쇼윈도 속 인형 같은 생명
그 뒤엔 평생 갇혀 산 어미가 있다
"신체 질병보다 깊은 정신적 상처"
전문가들이 펫숍을 반대하는 이유
출산이 불가능하단 이유로 번식장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강아지. 사진=카라제공
출산이 불가능하단 이유로 번식장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강아지. 사진=카라제공

화려한 조명 아래 진열된 어린 생명들, 그 이면에는 평생을 철창에 갇혀 출산만을 강요당한 모견들의 고통이 있다. 본지는 총 5회에 걸쳐 반려동물 산업의 기형적 구조인 '강아지 공장'과 이를 지탱하는 경매장 시스템, 그리고 소비의 실태를 심층 해부한다. 2025년 11월, 다시 발의된 '루시법'을 기점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본 기획이 산업의 모순을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파이낸셜뉴스] 강아지 공장이 공급의 문제라면, 이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지탱하는 것은 왜곡된 우리 사회의 소비문화다. 도심 한복판, 화려한 조명 아래 놓인 펫숍의 쇼윈도는 공장의 참혹함을 완벽하게 은폐하는 거대한 가림막이다.

투명한 유리장 안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그 어미가 평생 땅 한 번 밟지 못한 채 뜬장에 갇혀 기계처럼 출산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소비자가 펫숍에서 만나는 강아지의 상당수는 '번식장-경매장-펫숍'으로 이어지는 유통 사슬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반려동물 경매장은 20여 곳이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 매주 수많은 강아지가 거래된다.

경매장은 강아지의 출처와 이력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유통의 사각지대로 지목된다. 번식장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생후 40일 전후가 되면 어미와 강제로 분리되어 경매장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강아지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거나, 경매사의 손에 들려 수초 만에 낙찰된다. 낙찰가는 보통 소비자가의 30~40% 선에서 결정된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이른바 '신분 세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경매장을 거치는 동안 번식장의 이력이 불분명해질 수 있으며, 펫숍에 도착한 강아지가 '전문 켄넬 출신'이나 '가정견'으로 소개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동물생산업 허가 번호를 표시하지만, 소비자가 이 번호만으로 실제 번식장의 환경을 명확히 추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직장인 최 모 씨(29)는 "분양 상담 때는 분명 '가정 위탁견'이라고 했는데, 막상 계약서를 쓸 때 보니 출처란에 낯선 경매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이게 뭐냐고 묻자 직원은 '법적인 유통 절차상 형식적으로 적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며 "소비자가 찝찝해해도 '이미 정들지 않았냐'며 감정에 호소하면 거절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가장 예쁠 때'의 함정, 펫숍의 심리 마케팅

이처럼 불투명한 경로를 거쳐 펫숍에 도착한 강아지들이 소비자의 의심을 뚫고 선택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인간의 본능을 정조준한 치밀한 마케팅 심리학에 숨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가 정립한 '베이비 스키마(Kindchenschema)' 이론은 펫숍 마케팅의 핵심을 관통한다. 로렌츠는 인간이 '몸통에 비해 큰 머리', '얼굴의 중간 아래에 위치한 큰 눈', '둥근 뺨'을 가진 대상을 볼 때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가 해제되고 양육 욕구가 폭발한다고 증명했다.

미국 버지니아대 게리 셔먼(Gary D. Sherman) 교수팀이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귀여움'의 자극은 뇌의 보상 중추를 강하게 자극하여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상업적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그래서 일까, 생후 3~4개월이 지나면 '베이비 스키마' 효과가 감소하기 때문에, 유통 현장에서는 법적 기준인 2개월에 미치지 못하는 40~50일령의 어린 개체가 선호되기도 한다. 이는 소비자가 건강 상태나 출처를 이성적으로 검증하기보다, 본능적인 '귀여움'에 이끌려 구매를 결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서울의 한 펫숍에서 반려견을 구입했다고 밝힌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당시의 경험을 '이성이 마비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김 씨는 "퇴근길 쇼윈도 너머로 본 강아지는 비현실적으로 머리가 크고 눈이 컸다. 마치 갓난아기처럼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이 아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강렬한 본능이 솟구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이 '지금이 가장 예쁠 때고, 오늘이 지나면 다른 분이 데려갈 것'이라며 강아지를 품에 안겨주는데, 그 작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순간 가격이나 건강 상태를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며 "그 '치명적인 귀여움'이 결국 젖도 떼지 못한 어린 강아지를 억지로 꾸며낸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강아지가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병치레를 시작하면서였다"고 털어놨다.

한 펫숍 2층에서 발견한 개들의 모습. 사진=동물자유연대
한 펫숍 2층에서 발견한 개들의 모습. 사진=동물자유연대

'가정 견'의 탈을 쓴 펫숍, 온라인의 함정

오프라인 펫숍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온라인 펫숍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정 분양', '자체 브리딩(Breeding)'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지만, 실상은 펫숍의 또 다른 영업 창구인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 2024년 한국소비자원이 주요 온라인 오픈마켓과 중고거래 플랫폼의 반려동물 판매 게시글을 심층 조사한 결과, 판매자의 80% 이상이 동물판매업 등록번호를 기재하지 않거나 허위로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허가받지 않은 가정에서 돈을 받고 동물을 분양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단속의 사각지대인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통해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어 적발이 쉽지 않다.

동물권단체들이 '가정 분양'을 내세운 SNS 계정 100여 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역추적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들 중 약 90%가 실제로는 펫숍이 운영하는 위장 계정이거나, 불법 번식업자와 연결된 알선책이었다. 이들은 화려한 필터와 연출된 사진으로 생명을 '쇼핑 가능한 상품'으로 포장한다.

"펫숍 강아지, 공격성 2배 높다"… 과학이 경고하는 이유

펫숍 소비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신체적 질병 때문만이 아니다. 펫숍 환경이 강아지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평생 지속되는 행동학적 결함으로 이어진다. 미국 수의내과 전문의이자 동물 복지 연구의 권위자인 프랭클린 맥밀란(Franklin D. McMillan) 박사는 지난 2018년 세계소동물수의사회(WSAVA) 콩그레스에서 펫숍 출신견의 행동학적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맥밀란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인용해 "펫숍에서 구매한 개는 전문 브리더에게 분양받은 개보다 주인에 대한 공격성을 보일 위험(Odds ratio)이 2.13배, 즉 2배 이상 높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반려견 양육 환경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맥밀란 박사가 지목한 펫숍 출신견의 문제 행동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는 유전적 소인으로, 상업적 번식장은 '고관절 이형성증'이나 '강박 행동' 같은 결함을 가진 개체를 번식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둘째는 모견의 스트레스다. 뜬장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임신견이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태아의 뇌 발달을 저해해 학습 능력 저하와 감정 기복을 유발한다. ▲셋째는 조기 분리다. 생후 30~40일령에 어미와 강제로 떨어진 강아지는 산책 시 두려움을 느낄 확률이 15배, 과도한 짖음을 보일 확률이 6배나 높았다. ▲넷째는 사회화 부족이다. 긍정적인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할 결정적 시기(3~12주)를 트럭과 유리장 안에서 보내며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각인된다. ▲마지막으로 주인의 책임감 부재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주인은 교육과 산책에 소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불법 번식장서 구조된 안타까운 강아지. 사진=연합뉴스
불법 번식장서 구조된 안타까운 강아지. 사진=연합뉴스

'구조'를 가장한 소비… 산업 구조 수술 시급

많은 소비자가 펫숍 유리장 안에 힘없이 누워있는 강아지를 보며 연민을 느낀다.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이 아이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갑을 여는 행위를 스스로 '구조'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또 다른 학대를 낳는 '지출'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잔혹한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현장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윤리적 실천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대대적인 '수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나쁜 농장주 등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기형적인 유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환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국장은 한국 특유의 경매장 시스템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김 국장은 "우리나라는 경매장이 중간 유통의 개념으로서 박리다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며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판매해야 경매장이 수수료를 많이 벌기 때문인데, 이것이 우리나라 유통의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펫숍이 많은 이유 역시 경매장 때문"이라며 "강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돈만 있으면 경매장에서 물건 떼오듯 강아지를 사 와서 펫숍을 차릴 수 있는 구조가 비극을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일명 '루시법'으로 불리는 경매 금지와 판매 연령 상향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국장은 "국민 의식은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산업 구조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며 "1차적으로 루시법을 통해 경매를 끊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 체계(2개월령 판매)에서는 부모견으로부터 사회화를 전혀 배우지 못해 행동 문제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궁극적으로는 생산자의 자격 요건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김 국장은 "외국의 '브리더'처럼 평생 한두 번만 번식하고, 유전자 관리와 사회화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생산하게 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시설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허가제는 윤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사에서 언급된 상황은 특정 사례에 한정된 것으로, 전체 반려동물 산업계를 대표하는 사실로 볼 수 없음을 명확히 밝힙니다.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일반화된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hsg@fnnews.com 한승곤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