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일각 '조진웅 구하기' 나서
"독립투사를 생매장" 운운하며
소년범 이력 공개 불법성 부각
개과천선 없는데 장발장이라며
우리 편만 감싸고 피해자 외면
정치판 진영논리 민낯 재확인
여기까지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그런대로 작동 중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논쟁은 정치권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궤도를 이탈하는 양상이다. 범여권 인사 여럿이 조씨를 무조건 두둔하면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시절 기관장 자리를 꿰찼던 한 교수는 그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맞불을 놨다. 즉 "독립운동가의 약점을 잡아 대의를 비틀고 생매장시키는 책략(과 같다)"이라고. 하지만 논리의 비약을 넘어선 궤변으로 들렸다. 조씨가 문재인·이재명 정부에서 열린 이벤트성 광복 행사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독립(1945년) 후 수십년이 지나 태어난 인물이어서다.
친여 성향 유튜버 김어준은 별다른 근거 없이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나는 조진웅이 친문 시절에 해온 활동 때문에 선수들이 작업을 친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라면서. 하지만 조씨의 전력을 어디 야권이 폭로했나. 공교롭게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과 여당 원내부대표가 '현지 누나'를 거명하며 인사청탁 문자를 주고받을 시점에 불거졌을 뿐이다. 조씨는 문 정부 시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때 국민특사였지만,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재명 대통령 내외와 같이 관람했다. 설마 현 여권이 김현지 부속실장을 보호하려 그를 버리려 했겠나.
"조두순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면 응원할 건가"라는 식의 야권의 원색적 반박은 제쳐두자. 김어준 등 여권 인플루언서들이 조씨를 장발장에 빗대 "철없을 때의 실수"로 감싸는 건 황당하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겨우 빵 한조각을 훔친 죄로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니 "어린 시절에 철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실수였다고 눈감아주기에는…"(하서정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이라며 조씨의 중범죄 이력의 심각성을 지적한 대목이 보통 시민들에겐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듯싶다.
더군다나 조씨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화계에서 수차 폭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진다. 그가 "성공적으로 교화됐다"는 일부 주장이 무색할 만큼. 그럼에도 그가 진정성 있는 자숙의 시간을 거친다면 언젠가 복귀할 수도 있을 게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조진웅 일병 구하기'에 나선 여권 일각은 뭘 간과하고 있나. 그 과정에서 '우리 편'만 있고 조씨를 용서할 주체인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1'도 안 보인다는 점이다. 진영 논리에 빠져 사안을 균형 있게 바라보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최근 통일교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 큰 이슈로 떠오른 정국을 돌아보자. 이 대통령이 위헌 시비를 부를 수 있는 종교재단 해산 검토까지 지시했다. 그럼에도 진상규명은 더디고, 정교유착을 근절할 실질적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중기 특검은 야당 연루 의혹을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지난 8월 여당 인사들이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고도 수개월 동안 이를 덮었다. 특검 수사조차 진영 논리가 좌우한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철저한 편 가르기와 '내로남불'식 진영 논리는 한국 정치의 고질임을 뜻한다. 사안의 옳고 그름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모든 결정의 잣대이니, 경청과 양보로 이견을 절충하는 숙의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정치판은 끝없는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온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결국 조씨를 막무가내로 역성드는 인사들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진영 논리가 조씨의 소년범 이력보다 몇백 배 섬찟한 병폐임을 환기한 셈이다. 그래서 이들이 역설적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일종의 순기능을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양극화한 진영 논리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치유해야 할 최우선 과제임을 각인시켰다는 차원에서다.
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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