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파원 칼럼] 서울 말고 워싱턴을 보라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8 19:33

수정 2026.02.18 20:04

이병철 뉴욕특파원
이병철 뉴욕특파원
2019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22개월간 이어진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마무리되는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5월 29일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수사 종료 후 첫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보고서가 자신의 "증언"이라며 추가 설명을 자제했지만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통령이 명백히 죄를 짓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

뮬러 특검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 트럼프 캠프의 공모 여부, 그리고 대통령의 수사방해 가능성을 조사했다. 공모는 입증하지 못했다. 수사방해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 책임 판단을 의회의 영역으로 남겼다.

민주당 내에서는 탄핵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하원 법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특검이 공을 의회로 넘겼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워싱턴의 정치 공기는 이미 '탄핵'이라는 단어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인 5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돌연 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5% 관세를 부과하고, 불법이민이 멈추지 않으면 매달 5%씩 인상해 최대 25%까지 올리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금융시장은 출렁였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뉴스의 중심은 빠르게 이동했다. 하루 전까지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특검 발표와 탄핵 논의는 '멕시코 관세'와 '국경 압박'이라는 새로운 이슈에 밀려났다.

2026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1월 7일과 1월 24일, 두 명의 미국 시민이 사망했다. 르네 니콜 굿은 37세의 세 자녀를 둔 어머니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으로 차량 안에서 사망했다.

미국 전역은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 선동가"라는 공개 발언으로 ICE를 옹호했다.

그러나 약 보름 뒤 보훈병원 간호사였던 알렉스 프레티가 사망하면서 여론은 가파르게 추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대한 반대는 55%까지 치솟았고,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지며 집권 2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1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까지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한국 의회가 한미 무역협정의 후속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비무역장벽, 쿠팡 사태 등을 이유로 거론하기도 했다. 또 방위비분담금 증액이나 주한미군지위협상 등 다른 현안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 안에서 바라보면 시선은 조금 다르다. 워싱턴 정가의 관심은 한국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 더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 정치의 양 축은 이민과 관세다. 이민은 정체성과 결집의 언어이고, 관세는 실질적 효과를 체감시키는 수단이다.

그러나 1월의 잇단 사망사건은 이민정책을 '강경함'이 아닌 '과잉'의 이미지로 바꿔 놓았다. 여론이 흔들리자 의제 전환이 필요했다. 관세는 그 순간 가장 손쉬운 카드였다. 숫자로 제시되고, 즉각적이며, 상대를 압박하는 동시에 지지층에는 '행동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준다.

2019년 멕시코 사례처럼 2026년 한국 관세 발언 역시 협상용 위협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복되는 패턴은 분명하다. 국내 정치가 흔들릴 때마다 외부를 향한 강한 신호가 나온다. 이민이 상징이라면, 관세는 무기다.

특히 올해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다.
상·하원 권력지형이 바뀌면 트럼프 2기 후반부는 사실상 '레임덕'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결국 질문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 있다.
트럼프의 통상압박을 읽으려면 서울보다 워싱턴의 정치 기류를 먼저 봐야 한다는 점이다.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