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오늘 실패했다고 망한거 아니예요, 세상이 다그쳐도 스스로에겐 관대해지세요" [괜찮아, 다시 인생]

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01 14:00

수정 2026.03.12 13:38

[영화 기자·북 큐레이터에서 농부가 된 안효원씨 이야기]
서른 즈음 찾아온 근무력증…아파서 고향으로 '던져진' 삶
중환자실 9일, "왜 내게 이런 일이" 원망 대신 "어떻게 살 것인가" 다짐
"멈추면 안 되는 도시의 삶… 실패해도 괜찮으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길“
인터뷰를 위해 포천 한 카페에서 만난 농부이자 작가인 안효원씨. /사진=김희선 기자
인터뷰를 위해 포천 한 카페에서 만난 농부이자 작가인 안효원씨. /사진=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석쇠에 걸려 물꼬에 몰려 있는 우렁이를 한 움큼 손에 쥐고는 있는 힘껏 던진다. (…) 그러다 문득 내가 우렁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한 번도 시골에 내려와 농사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中)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싶을 서른 즈음, 한창 일하느라 바빴던 바로 그때. 안효원씨의 삶은 예고 없이 멈춰 섰습니다.

몸무게가 1년 만에 20㎏ 넘게 빠졌고 얼굴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표정 하나 짓기도 어려워졌죠.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본 뒤에야 진단받은 병명은 희귀 질환인 '중증 근무력증'. 자가면역 반응으로 인해 신경-근육 접합부 기능이 저하되어, 근육을 사용할수록 피로해지고 힘이 빠지는 만성 희귀 자가면역 질환이었습니다.

'컬처뉴스', '필름 2.0'에서 영화기자로, 대형 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북 큐레이터로 치열한 삶을 살던 그는 살기 위해 고향 포천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그는 능숙하게 트랙터를 몰고 논밭을 누비는 농부이자 농촌 생활 에세이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를 펴낸 작가로서 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보낸 9일, '왜'라는 질문을 버리다

포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 작가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병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시원시원하게 그때의 이야기를 돌이켰죠. 근무력증이 폐 근육까지 번져 가슴을 열고 6시간에 걸친 흉선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평온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근무력증이 심할 때는 폐 근육이 작동을 안 했어요. 피 속에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높아서 정신이 깜빡깜빡 나가버리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수술한 뒤에 중환자실에 9일 동안 있었는데 그때 많은 생각을 했죠. 그때 저를 제외한 20명은 다 의식 불명 상태였어요. 눈을 뜨고 의식이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죠.”

그 병실에서 안 작가는 하루 두 번 15분, 짧은 면회 시간 동안 말 한마디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봤습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상태를 살펴보러 들리는 의료진의 방문에 잠도 푹 잘 수 없었고요. 병상에서 보낸 그 시간 동안, 안 작가가 처음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찾아온 근무력증의 발병 원인이 '심한 감기'나 '스트레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감기 걸리는 사람이 나뿐인 것도 아니고,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안 작가는 그 사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 입원 4일째 되던 날,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왜 아팠는지를 아는 게 지금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빨리 나아서, 나를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그때 '왜'라는 질문이 딱 사라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진=안효원씨 제공
/사진=안효원씨 제공

꽉 조인 복대를 풀고 찾은 인생의 '숨구멍'

수술 후 포천으로 돌아온 안 작가는 “내려온 게 아니라 고향으로 그냥 확 던져진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자신이 쓴 책의 문장대로 '시골로 던져진 우렁이' 신세가 된 거죠. 귀농 후 약 1년 간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력이 없어 그저 흘러가는 구름만 보고 살았습니다. 부모님 역시 아파서 내려온 아들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는 온전히 회복에만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은 에너지가 차오르는 우물로 변했습니다.

몸이 낫자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본격적인 농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벼농사를 짓고 옥수수와 감자를 심고, 남은 밭에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도 하면서 어느덧 농부 생활 15년 차를 맞이했죠. 그 사이 그를 괴롭히던 병도 완치됐고요. "도시에 있을 때보다 스트레스가 98%는 줄어서 감사하게도 병이 다 나은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 그는 요즘도 매일 같이 흙바닥에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고 합니다. 최근 겪은 '복대 사건' 역시 그가 얻은 깨달음의 축소판이죠.

“농사를 짓다 보니 아무래도 허리에 부담이 가는데, 작년 9월부터 허리가 계속 아파서 복대를 샀어요. 바늘 구멍 하나 안 들어가게 숨도 못 쉬고 꽉 조인 채로 하루 종일 살았죠. 그런데 도무지 안 낫는 거예요. 그러다 하루는 이웃 할머니 댁에 인사를 드리려고 새 옷을 입고, 그 김에 복대를 안 하고 나갔는데 오히려 편안하더라고요. 피가 통하고 근육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꽉 조인다고 좋은 게 아니었던 거죠. 무언가에는 항상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안 작가는 귀농 후 매일 밤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 잘했어. 한 번 더, 천천히 해보자"는 네 마디를 속삭입니다. 그는 세상의 속도에 치여 빡빡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이 네 마디를 권했는데요. 한 번의 실패가 '망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관대해지자는 의미입니다.

포천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는 안효원씨. 흰 강아지의 이름은 횡성, 갈색 강아지는 한우다. /사진=안효원씨 제공
포천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는 안효원씨. 흰 강아지의 이름은 횡성, 갈색 강아지는 한우다. /사진=안효원씨 제공

글쓰기로 넓어진 세상, 그리고 '고라니 쉼터'

농사일에만 매달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은데, 안 작가는 최근 에세이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쓴 에세이 '서울총각 시골에 집짓고 장가간 이야기' 이후 약 14년 만의 신작인데요. 포천시 문화지원사업에 지원서를 내고, 그의 등을 떠밀어준 아내의 끈질긴 권유로 시작한 책 작업은 그에게 스스로의 반경을 넓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죠.

“오랜만에 글을 쓰는 과정도 되게 즐거웠고, 이 시기에 굉장히 했어야 하는 고민이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뒤처지고 줄어들겠구나. 내 반경이 넓어졌구나 생각하니까 되게 고마웠죠.”

안 작가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는 3월 말부터는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공간인 '밤나무 북스테이' 건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는 이곳을 세상의 속도에 치인 사람들을 위한 '고라니 쉼터'라 부르고 싶다네요.

“여긴 고라니가 많은데, 제가 보는 고라니 중에 반은 로드킬 당한 고라니예요. 차가 너무 빠르니까 피할 수 없어서 죽는 건데, 그 모습에서 우리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세상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거기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구나, 시대에 로드킬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은 거죠. 그런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망가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도시선 계속 걸어야 하지만… 시골선 누워도 됩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최근 딸을 데리고 아이돌 콘서트장을 찾았던 경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한산한 시골 풍경 속에서 느리게 걷던 그는 수만 명의 인파 속에서 진행 요원들이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느꼈다고 합니다.

“안내 요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멈추시면 안 돼요. 걸으셔야 돼요'였어요. 그걸 보면서 한편으론 참 서글펐습니다. 멈추면 위험해지는 곳, 계속 걷기만 해야 하는 도시의 삶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시골에서는 그냥 길에 누워도 되거든요. 대신 돈 버는 방법보다 '돈을 안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오셔야 해요.”
큰 딸 재인이와 함께 있는 안효원씨의 모습 /사진=안효원씨 제공
큰 딸 재인이와 함께 있는 안효원씨의 모습 /사진=안효원씨 제공

끝없이 엑셀을 밟아야만 도태되지 않는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70%의 면적에 인구 8%만이 사는 넉넉한 시골은 숨을 고를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기자, 북 큐레이터로 바쁜 도시의 삶을 살아오다 포천의 흙바닥에서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쉼터의 주춧돌을 올리는 농부이자 작가의 조언이죠. 마지막으로 안 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의 궤도를 이탈해 자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원인도 모른 채 불쑥 일어납니다. 제가 아팠던 것처럼요. 오늘 하루 실패하고 다 망한 것 같아도, 그게 망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단단해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다 나를 다그치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세요. 당신의 빡빡한 인생에도 작은 숨구멍 하나쯤은 꼭 내어주시길 바랍니다.
"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