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바둑판 바닥을 보면 작은 홈을 볼 수 있다. ‘향혈(響穴)’이라 불리는 이 구멍은 그 쓰임새가 불분명하다. 착수음을 곱게 만들기 위해, 혹은 바둑판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끄는 이야기는 훈수꾼의 혀를 자른 피를 담았더라는 것이다. 진지하게 대국을 펼치는 이들에게 책임 없는 훈수가 얼마나 죄악시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에도 갖가지 훈수가 있다.
최근 상왕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친명(親 이재명 대통령)과 친청(親 정청래 대표) 계파갈등이 점입가경에 이르는 가운데 승부를 가르려 무리수를 던져서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이 그것이다. 친명은 도를 넘었다며 부글부글 끓고, 상대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과 특별검사를 외치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화들짝 놀란 친청은 곧장 ‘단호한 대응’을 천명하고 고발이라는 실질적인 대응에 나섰다. 끼고 돌던 훈수꾼이라도 판세를 어지럽히는 훈수에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몸통을 손대지는 못했다. 김어준씨가 아닌 방송에 출연해 해당 의혹을 언급한 장인수씨를 고발해서다. 방송 출연자의 주장이 문제이니 방송국은 고발 대상이 아니라 설명하지만, 김씨의 편파적 의도를 담은 방송이 쌓이다 터진 것이라는 본질은 외면한 판단으로 보인다.
대국의 책임은 오롯이 플레이어에게 있다. 훈수꾼이 떠드는 것은 자유일지 몰라도 주제넘게 돌을 놓으려는 것까지 묵인해서는 책임 있는 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다. 어지러워진 바둑판을 뒤엎어 향혈을 드러내고 훈수꾼의 혀를 자르라. 그리고 한낱 호사가의 말이 아닌 민심을 들으며 차분히 착수하길 바란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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