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이란 작전에 호르무즈 대비책 간과
트럼프, 예상치 못한 유가 폭등에 당황
푸틴, 뜻밖의 수혜… 시진핑, 표정관리
미국 제재로 제값 못받던 러시아산 원유
호르무즈 해협 봉쇄되자 수요 급증 웃돈
우크라 전쟁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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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재로 제값 못받던 러시아산 원유
호르무즈 해협 봉쇄되자 수요 급증 웃돈
우크라 전쟁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분산
예상치 못한 국제유가 상승으로 미국은 당황하고 있고,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도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황이 확대되면서 중동 지역 주요 국가들은 이번 전쟁에 자연스럽게 끌려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의 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중동 지역의 정세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개될 우려가 크다.
반면 러시아는 지금까지 이번 전쟁의 승자로 꼽힌다. 러시아 원유를 사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줄을 서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중국 역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스테파니 T.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심각한 국제법 위반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쪽은 워싱턴이 견제하려 했던 세력들"이라며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계속할 용기를 얻을 것이고, 중국은 대만을 공격할 힘을 얻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군사력 과시 vs 경제·정치 부담
이번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또 한 번 군사력을 과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중동 전쟁에서도 그대로 재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이 북한처럼 핵무장을 완료한 국가로 자리 잡기 전에 이를 차단하려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핵시설과 군사 인프라가 타격을 받을 경우 이란의 핵 개발이 수년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전쟁 비용과 유가 상승은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로라 블루멘펠드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영국 매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경제와 지역 안정뿐 아니라 공화당의 중간선거 성적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숙적 제거와 전략적 이익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숙적인 이란을 본격 공격하고 이란을 37년간 통치해 온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를 제거하면서 목적을 이뤘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란의 핵무장을 '존재적 위협'으로 규정해 왔다. 또 이번 공격으로 이란이 지원해 온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 세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이스라엘에게는 전략적 이익으로 꼽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전쟁에 대해 "내가 40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로 이란 정권 교체를 18년 정치 인생의 중심 주제로 삼아왔다.
올해 이스라엘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란 전쟁은 네타냐후에게 군사 작전인 동시에 선거 캠페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전쟁 비용도 적지 않다. 외신들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스라엘 경제 손실이 주당 약 29억달러(약 4조4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본토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란: 체제 생존의 분수령
이란에게 이번 전쟁은 체제의 생존과 중동 전략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외신과 싱크탱크들은 전쟁이 단기적으로는 정권 결속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와 군사력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외부와의 군사 충돌이 이란 내부 강경파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민을 정권 주변으로 결집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번 전쟁이 이란의 핵 억지력 확보 논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군사 충돌이 이란이 핵무기를 통한 억지력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정권 붕괴가 현실화될 경우 이란 국경을 넘어서는 장기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경우 억압받아 온 쿠르드족과 발루치족, 이슬람주의 세력의 무장 투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불안정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동국: 참전 못 하는 전략적 딜레마
이란 전쟁에서 사우디·아랍에미리트연합(UAE)·쿠웨이트·오만 등의 포지션은 구조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오만과 카타르는 전통적으로 테헤란과의 중재·소통 채널을 중시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최근 데탕트에 투자했음에도 억지력 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쿠웨이트는 신중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강경한 입장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란이 일부 국가를 공격했지만 이들은 결국 이란과 영구적인 이웃이기 때문에 참전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 딜레마가 전후 중동 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아틀란틱 카운슬은 "미국의 이란 작전이 종료된 한참 후에도 중동 국가들은 안보·경제 전략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유가 상승과 전쟁 분산의 최대 수혜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현재 이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러시아"라고 말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미국은 해상에 묶인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을 각국이 구매할 수 있도록 30일 면제를 전면 확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따른 초과 세입이 하루 1억5000만 달러(약 2200억원)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또 군사 자산 분산이다. 미국의 패트리어트·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등 첨단 미사일 방어 부대가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선 부담도 줄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관심 분산이다. 미국이 이란이라는 중동의 수렁에 발이 묶이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약해지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유럽: 배제된 채 비용 떠안을 우려
유럽은 이번 전쟁의 초기부터 사실상 배제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럽에 전쟁에 대한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고 유럽 국가들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채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 치르는 대가는 즉각적이다. 높아진 유가와 가스 가격은 이미 인플레이션과 경쟁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 소비자와 산업계에 추가 부담을 주고 있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역량을 연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유럽 정부들에게 매우 불편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테러를 수출해 온 독재 정권의 몰락에 대한 안도감과 더불어 유럽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화에 대한 우려, 그리고 제한된 영향력과 선택권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다. 특히 이란 붕괴 시 쏟아질 수백만 명의 난민은 2015년 시리아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전략적 관망 속 계산된 이익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중국의 이란에 대한 외교적 자제를 신뢰성 부재나 무관심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미국을 희생시키고 장기 목표를 달성하며 부상하기를 바라는 장기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의 수혜는 다층적이다. 미국의 첨단 미사일 방어 자산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 공백이 커졌고 중국이 공급한 안티스텔스 레이더가 이란군의 전자전 역량을 보강했다. 아틀란틱 카운슬은 "중국은 군사용 희토류 수출 금지로 미국의 무기 보충을 어렵게 만드는 비대칭 압박까지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은 전략비축유 104일치를 확보해 두었고 전쟁 직전까지 이란산 원유를 대량 비축했으며 이란 역시 원유 수출의 주요 고객인 중국에 별도 통로를 열어줄 강한 동기가 있다.
다만 리스크도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중국은 새로운 이란 정부가 미국 쪽으로 재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중동 의존도가 만든 '무고한 피해국'
인도는 이번 전쟁의 최대 '무고한 피해국'이다. 원유 수입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걸프 지역에 거주하는 910만 인도인이 연간 514억 달러를 본국에 송금한다. 송금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5%에 달하며 이는 대미 수출의 두 배 수준이다. 전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인도 경제에도 실질적인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인도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비판하지 않았고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암살을 규탄하지도 않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특히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공격을 규탄하며 이들 국가와의 연대 의사를 밝혔다. 인도는 그 어느 국가보다 중동 지역의 긴장 완화를 희망하고 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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