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日특유의 삶의 지침 '산자루'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7 18:09

수정 2026.03.17 20:22

⑦닛코 동조궁의 세 원숭이

토쿠가와 이에야스 추모 '동조궁'
8장 목조편액 중 두번째인 '三猿'
일본인 일생 순차적으로 보여줘
일상·역사·전설로 자리잡은 '猿'
손오공과 함께 봉건사회의 토대
토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의 추모 공간으로 조성된 일본 닛코 동조궁에 가면 눈과 귀와 입을 가리고 있는 세 원숭이, 삼원(三猿·산자루)을 만날 수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토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의 추모 공간으로 조성된 일본 닛코 동조궁에 가면 눈과 귀와 입을 가리고 있는 세 원숭이, 삼원(三猿·산자루)을 만날 수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일본인론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가 무엇일까. 닛코 동조궁의 '산자루'(三猿·삼원)다. 한반도에는 자연 상태의 원숭이가 없었고,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원숭이 뼈가 보고된 적이 없다. 열도에는 남에서 북까지 골고루 원숭이가 분포하고, 동북지방 눈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원숭이의 모습도 인상적이며, 일상생활과 역사·전설 속에서도 풍부하게 자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추모공간으로 1636년 건설된 동조궁 부속건물인 신큐사(신구사)의 처마 아래 외벽 상부에 조각된 15마리의 원숭이가 등장하는 8장의 목조 편액이다. 그중에서도 두번째인 '산자루'가 으뜸이다.

조각가로 알려진 히다리 진고로의 이름 자체가 '천하제일 장인'의 별칭으로 통하게 된 일본 미술사가 대변하는 의미에 토를 달 이유는 없다.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

'논어'의 안연편에서 인(仁)의 실천방법에 관한 질문에 대해 공자는 극기복례의 지침으로,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동조궁의 삼원에서는 보편적 삶의 지침으로부터 목적은 가리고 수단만을 채택해 백성의 도리로 제시했다. 오승은의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의 충직한 심부름꾼인 손오공이 또한 대표적인 원숭이 모델이다. 요괴와 변신의 전설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을 호리병 속에 가두는 손오공은 인기 절정의 영웅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 책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을 중국도 아닌 일본의 천리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서유기통서'(西遊記通書)라는 제목의 일본어판이 1652년 발행됐으며, 이것을 필두로 중국 고전 번역·출간 붐이 일어났음은 토쿠가와 260년간 봉건사회의 사상 토대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당시 책을 만드는 사업 자체가 범국가적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6년의 시간차를 보이는 삼원과 손오공의 연속 등장은 일본식 봉건제 구축을 기획한 3대 장군 토쿠가와 이에미쓰의 통치정책과 연동됨을 알 수 있다. 심신지배의 상하구도가 전제된 계급사회에서 상층의 생활양식이 하층에 선택적 전이를 보이는 역사적 수용 과정을 주장했던 독일 민속학자 한스 나우만의 '침강문화론'이 동조궁 삼원과 '서유기통서' 손오공으로 집약되는 봉건사회의 모델을 만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튼튼해 보이는 원숭이 부조를 통하여 일본인의 일생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성장 과정에 있는 원숭이들의 연령대를 분간할 수 없도록 한 표현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기법상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제작의 목적에 배치되는 표현은 과감하게 생략한 결과일 것이며, 동조궁 전체의 배치 속에서도 부속건물인 마구간의 장식용으로 조성한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수성인 원숭이가 화성인 말을 수호한다는 오행사상도 개입되었다. 말은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다. 봉건체계하의 평민은 말처럼 봉사하는 지위를 강조하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정면의 왼쪽부터 번호를 붙이면 1번에서 새끼는 어미를 빼꼼히 쳐다보고, 비파 모양의 열매와 구름을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가 오른팔을 늘여서 새끼를 감싸고 있다. 2번이 문제의 삼원이다. 일생이라는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설정할 때, 이것은 특별한 의도로 삽입됐다. 원숭이의 모습이 유년기도 아니다. 한 마리는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다른 한 마리는 양손으로 두 귀를 가렸다. 또 다른 한 마리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오른손을 세로로 세워서 입을 막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누르고 있는 표현이다. 세치 혀에 대한 잠금장치를 확실하게 했다. 3번은 한 마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인데, 4번부터 7번까지의 특징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감수성 깊은 일본인들은 어떻게 읽고 있을까. 8번은 임신한 암컷을 표현함으로써 삶의 완성과 후세 양육이라는 명제를 담고 있다. 8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어서 1번으로 순환하는 윤회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따라서 8장은 하나의 원을 그리는 형태로 이해함으로써 시각적 효과의 불교적 영향을 표현하고 있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삼원의 위치가 2번에 자리한 것은 봉건주의 심성교육의 시작점이 유년기라는 교육적 목표의 의지를 시간적으로 구현하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

원숭이의 몸 전체는 누런 털의 색감을 살렸고, 눈 부분도 연한 누런 털 모습을 보인다. 귀와 얼굴과 배는 일본 불교화에서 피부 표현의 기본 바탕이 되는 백색의 호분(胡粉)으로 처리했다. 백색은 잿빛 및 검은색과 대비되어 정화와 극락을 시각화하는 효과를 낸다. 삼원의 원숭이 눈 부분은 잿빛으로 처리하였음이 주목된다. 중세의 지장보살 좌상에서 잿빛 가사와 배경은 지옥의 재와 연기를 상징하며, 중생 구제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에도시대 지고쿠헨(지옥변) 불화에서도 잿빛 연기와 재는 죄인의 고통과 윤회 무상을 시각화한다. 삼원의 원숭이들에게만 눈에 잿빛을 적용한 의도가 분명하다. 원숭이들의 손발 부분은 예외 없이 검은색을 칠했다. 농민들은 갈옷과 같은 검은색을 노동복에 적용해 흙과의 일체를 보였으며, 마네키네코나 가정의 장식에 사용한 검은색은 악령 퇴치와 재해 방지를 상징했다. 18세기의 민란에서 농민들은 검은색 머리띠를 두르는 단결과 저항을 나타냄으로써, 검은색은 농민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잿빛이 응어리져 입체화의 얼룩이 쌓이면 검은색으로 반전하는 농민전쟁의 맥락이 짚어진다. 잿빛 교육의 불교적 봉건주의가 260년간 토쿠가와 평화를 담보했다는 일본사의 맥락이 선명하다.

■요괴에 익숙한 日, 손오공에도 열광

채색문화론과 색채심리학의 일본문화론은 무궁무진하다. 루스 베네딕트의 전시정보국(OWI) 보고서 제25호가 표지만 바꿔서 '국화와 칼'(1946년)로 출판되었으니, 안팎의 비판은 당연하다. 일본인의 사회심리학과 일상행동을 분석하는 '일본문화론'을 논하면서, 삼원과 관련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는 그녀가 한번도 일본 땅을 밟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상적 수치문화를 언급하는 수준의 서양인 관점으로는 '삼원 심리학'의 심층구조를 넘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삼원으로 표현된 일본사상의 저변은 지금도 작동하는 일본인의 중추적 관념이다.
그러면 서유기가 전해주는 사자성어인 견원지간은 어떤 의미로 전승될 것인가. 손오공의 여의봉과 이랑진군의 삼첨창이 부딪치는 신판 서유기가 전개될 것인가. 삶이 두려워지는 동아시아판의 시간이 가까이서 수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