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를 덮친 '종량제봉투 대란'의 풍경은 이 가상의 설정과 닮아 있다.
정부는 전국 평균 재고가 3개월 이상이며, 재생원료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장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했다. 시민들은 이미 "지금 안 사면 정말 못 구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집단적인 사재기에 나섰다. 그 결과 대형마트와 편의점 진열대에는 '1인당 구매 제한' 문구가 붙었고, 심지어 다른 물건을 사야만 봉투를 내어주는 '끼워팔기'라는 기이한 유통왜곡까지 등장했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평균 재고라는 숫자는 통계적 안정의 근거는 될지언정, 당장 집 앞 편의점에서 헛걸음을 하는 시민의 체감 부족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 위기 국면일수록 정부는 단순히 총량을 발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별 공급편차와 유통 과정의 병목현상을 세밀하게 점검했어야 했다. 소비자 심리를 관리하지 못한 채 내놓은 "괜찮다"는 말은 오히려 현장의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동시에 우리 시민들의 '각자도생'식 대응도 돌아봐야 한다. 사재기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재기가 진정으로 확대하는 것은 물량의 부족이 아니라 '불안의 크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창고에 쌓아둔 수백장의 봉투는 당장 오늘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이웃의 기회를 박탈한 결과물이다. 이는 '더 에이트 쇼'의 위층 거주자가 아래층의 배고픔을 외면한 채 자원을 독식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중동전쟁이라는 외부 변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생활 속 재난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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