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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기업에 분리교섭 첫 인정, 혼란 줄일 보완책 시급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9 18:08

수정 2026.04.09 18:08

원청을 하청노조 '사용자'로 판단
'쪼개기협상'과 연쇄파업 등 우려
민간기업 원청이 하청노조와 분리 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의 첫 판단이 나왔다 지난달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 모습. /사진=뉴시스
민간기업 원청이 하청노조와 분리 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의 첫 판단이 나왔다 지난달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 모습. /사진=뉴시스
원청인 민간 대기업이 직접 고용하지 않은 하청 노동자 단체와 별도 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경북지방노동위는 8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하청지회와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소속 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사용자로 인정하고 교섭단위도 분리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노란봉투법(노봉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지난달 10일 시행된 지 약 한 달 만이다.

종전에는 하청노조의 교섭이 주로 직접 고용관계가 있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노동위가 분리교섭을 인정한 것은 노봉법 시행령에서 '노조 간 이해관계의 공통성'이나 '노조 간 갈등 유발 가능성' 등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청노조의 상급단체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으로 다르거나 처우가 다른 경우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동위의 이번 판단에 따라 향후 기업들은 수많은 하청노조가 제기하는 개별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 이른바 '쪼개기 협상'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노봉법 시행 이후 지난 7일까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노조는 총 987곳, 14만4800명이다. 이런 교섭요구를 받은 원청은 368곳에 이른다.

기업 현장에서는 교섭창구가 여러 개로 분산되면서 협상구조가 복잡해지고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섭창구에 따라 협상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현장의 의사결정도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안전 문제 등 원청의 책임이 분명한 의제를 중심으로 교섭이 이뤄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고용 등으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원청이 하청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되거나 하청의 파업이 연쇄적으로 벌어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하청노조가 파업을 해도 원청이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어서 빈 자리에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봉법 시행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됨에 따라 파업으로 공장이 멈춰서도 원청이 다른 인력을 임시로 투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협상의 숫자가 많아지고 기간이 길어질 경우 기업의 비용 부담만 커지는 게 아니라 생산 차질과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하청노조의 권리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노노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8일 포스코가 하청직원 7000명을 직고용하기로 하자 기존 포스코 노조 측이 공감대 형성 과정이 없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2017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은 제도라도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예상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노봉법 시행에 따른 교섭구조 변화는 노사관계뿐 아니라 일자리와 관련된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현장 의견을 충분히 들어 노봉법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섭단위 분리 기준과 사용자성 판단 원칙을 명확히 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노노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이 심해질 때를 대비해 조정 및 중재 체계를 갖출 필요도 있다.
제도의 성패는 현장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