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ETF 출시 경쟁의 그늘

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19 18:44

수정 2026.04.19 20:25

박지연 증권부
박지연 증권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국 다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어느새 400조원 규모로 불어났다. 불과 1년 사이 몸집이 두 배 가까이 커질 만큼 성장 속도가 가팔랐다. 불어난 숫자만큼 국내 자본시장 저변은 넓어졌고 투자자들의 선택지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시장 안을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다르다.

매주 ETF가 많게는 4~5개씩 쏟아지는데, 구조는 겹친다. 특정 테마가 주목받기 시작하면 유사한 ETF가 줄줄이 등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 대형주와 채권을 섞은 ETF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5%씩 담고, 나머지 50%는 채권으로 채우는 구조의 상품이 운용사별로 잇따라 상장됐다. 업종 테마 ETF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스페이스X 상장을 앞두고 우주항공 테마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운용사 5곳에서 관련 ETF 출시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황이 살아나거나 투자자의 관심이 쏠리는 순간 비슷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상품이 빠르게 뒤따르는 양상이다.

운용사들도 억울한 측면은 있다. 국내외 지수형 상품은 이미 대형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결국 독창적인 업종 ETF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망한 업종이나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일한 아이디어를 두고 각자 준비하다 출시 시기만 겹치는 사례가 더러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반복되면서 시장이 '차별화 경쟁'보다는 '복붙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투자전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구조를 안전하게 따라가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운용사 간 경쟁은 상품 혁신보다는 보수 인하 등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ETF 시장이 커질수록 혁신보다 '안전한 선택'이 반복되는 구조다.


국내 상장 ETF 수는 어느덧 1100개 돌파를 앞두고 있지만 투자자가 체감하는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사한 구조의 ETF가 연일 쏟아지면서 이름과 운용사, 보수만 비교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400조 시장이라는 외형 성장에 걸맞게, 이제는 얼마나 새 상품을 빠르고 많이 내놓느냐보다 얼마나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