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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뒤엔 종이값 담합… 제지 6곳 가격 재결정·3383억 과징금

김찬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3 12:00

수정 2026.04.23 15:58

3년10개월간 60차례 회합
7차례 가격 인상에 종이값 71% 뛰어
무림 "재발 방지 위해 전사적으로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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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3년 10개월간 종이값 담합을 벌인 국내 주요 제지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국내 인쇄용지 시장의 95%를 점유한 6개 제지사에 총 3383억원의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이 내려졌다.

공정위는 23일 무림에스피, 무림페이퍼, 무림피앤피,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 등 6개 인쇄용지 제지사가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인쇄용지 전 제품의 가격 인상을 합의·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향후 법위반행위 금지명령,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3383억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등 2개 법인은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약 3년 10개월간 정기·비정기적으로 최소 60차례 이상 만나며 총 7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을 공모했다.

제지사가 먼저 정가 성격의 기준가격을 정하고 거래처별 할인율을 적용해 실제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인데 기준가격을 직접 올린 경우가 2차례,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식이 5차례였다.

담합 수법도 치밀했다. 업체 임직원들은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공중전화, 식당 전화, 타 부서 직원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이나 가명으로 적어 관리했다. 거래처의 반발이 특정 업체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격 인상 통보 순서까지 사전에 정했고,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사위 등을 던져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담합이 처음 이뤄진 2021년 직전 업계의 출혈경쟁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담합에 나선 정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지는 장치산업인 데다 원가 구조가 비슷하고 제품 차별성이 크지 않다"며 "기준가격 제도 역시 담합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담합 기간 국내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평균 71% 상승했다. 제지사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했지만 부담은 유통업체와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이번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가 처리한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5번째로 크다. 제지업계 담합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 4조300억원을 기준으로 5개사에는 12%, 1개사에는 4%의 부과 기준율을 적용했다.

경쟁 회복을 위한 시정조치도 함께 내렸다. 마지막 7차 합의 이후 전체 거래처 대상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아 담합 효과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고, 각 제지사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인쇄용지 제품 가격을 담합 이전 경쟁 수준으로 독자 재결정하도록 했다. 또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번 가격재결정 명령은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두 번째 사례다.

남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가격을 보다 신속하게 경쟁 수준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시정조치"라며 "앞으로도 필요 시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무림은 이날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대해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전사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고 이를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 조직, 교육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준법경영 체계를 전면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면서 "엄격한 내부 통제 기반을 마련하고 컴플라이언스 전담 부서를 별도 운영하며 정기적인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의무화해 준법 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겠다"고 덧붙였다.


무림은 마지막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이번 사안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며 "보다 엄격한 준법 기준과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hippo@fnnews.com 김찬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