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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가 된 공급망, 요동치는 에너지 가격... 세계 경제 뉴노멀 온다 [글로벌 리포트]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6 18:27

수정 2026.04.26 18:55

'세계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봉쇄
일부 국가는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
'가격→ 확보'에너지 안보 대전환
관세폭탄이 쏘아올린 美·동맹 균열
전쟁상황서도 원하는 호응 못 얻어
'미국 없는 나토' 등 다극 체제 가속
전쟁포로가 된 공급망, 요동치는 에너지 가격... 세계 경제 뉴노멀 온다 [글로벌 리포트]
전쟁포로가 된 공급망, 요동치는 에너지 가격... 세계 경제 뉴노멀 온다 [글로벌 리포트]
전쟁포로가 된 공급망, 요동치는 에너지 가격... 세계 경제 뉴노멀 온다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50일을 넘어서면서 세계 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예상보다 길어진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성장 둔화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와 주요 연구기관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국제 정세 역시 크게 요동쳤다. 전장이 된 중동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고,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마저 이번 전쟁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모든 것은 불확실성과 변동성 속에 놓여 있지만, 종전 이후에는 서서히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정을 논의하면서 전쟁의 끝도 점차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세계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의 3.3%에서 3.1%로 낮췄다. 반면 세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해 4.1%에서 4.4%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 1월 전망치인 3.8%보다 높은 수준이다. 낮은 성장과 높은 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성장률은 2%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MF는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부분 봉쇄 시 성장률이 2.5% 수준으로 하락하고 물가는 5% 안팎으로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봤다. 최악의 경우 해협 봉쇄와 전면 확전이 현실화되면 성장률은 2% 수준까지 떨어지고 물가는 6% 이상 치솟으며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다. IMF는 에너지 가격과 해상 물류가 모든 시나리오의 핵심 변수라고 강조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피에르-올리비에 구린샤스는 "전쟁이 조기에 종식될 경우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특징지어지는 기술 붐과 생산성 향상이 결합돼 세계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로 복귀하며 회복 탄력성을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안보 '가격에서 확보로'

이번 전쟁으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는 단순한 공급 안정 차원을 넘어 구조적 재편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원유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100달러 안팎까지 상승했다. 가격 상승을 넘어 실제 수급 불안이 발생하면서 일부 국가들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기도 했다.

파티흐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중동 분쟁으로 인한 에너지 생산 손실을 회복하는 데 약 2년이 걸릴 것"이라며 "예를 들어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는 '가격'이 아니라 '확보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공급망, 생산, 전환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질서 역시 다극화·분산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첫째는 공급망 다변화다. 특정 지역, 특히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 수입국들은 에너지 수입선을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하고 해상 운송 경로를 분산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전쟁 전 전체 원유 수입의 약 52%를 중동에서 들여왔지만 최근에는 31%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알제리, 이집트 등으로 수입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초크포인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글로벌 에너지 흐름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둘째는 자국 생산 및 비축 확대다. 각국은 전략비축유를 늘리는 동시에 원유·가스 등 자국 내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으로 충격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외부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이중 전략이다.

셋째는 에너지 전환 가속화다. 재생에너지와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해 구조적으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이다. 특히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와 비용 통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목적이 크다. 외신들은 이번 전쟁이 오히려 친환경 에너지 투자와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극화 질서 '유라시아 축 영향'

이번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가 추진해 온 유라시아 중심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충돌로 해석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러시아의 남북 국제 수송 회랑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군사적 압박이 결과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전략적 통로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란은 카스피해와 아라비아만을 동시에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로,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물류망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실제로 중국은 이란 항만과 철도망을 일대일로의 주요 허브로 구축해왔으며, 러시아 역시 이란을 통해 인도 시장으로 연결되는 남방 물류 통로를 확대해왔다. 다만 이번 사태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 개입 없이 제한적인 외교적 대응에 그치고 있어, 이른바 '유라시아 협력 축'이 안보 차원에서는 느슨한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제 질서가 단극 체제에서 다극 구조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미국의 영향력과 동맹 결속력이 이전보다 약화된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 자국의 전략적 이해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인도, 사우디 등 중간국가들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세계는 하나의 중심이 아닌 여러 축이 병존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맹 균열 '유럽판 나토 부상'

미국 중심 동맹의 결속도 점차 느슨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조치 등으로 동맹국들 사이에서 불만이 누적돼 왔고, 이번 전쟁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유럽 등에 사전 고지 없이 이란을 폭격한 뒤 군사 기지 사용을 요청했지만, 유럽은 이에 선을 그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한국, 일본 등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호응을 얻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때 전쟁 이후에도 동맹 비용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이미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는 상황을 가정한 대비에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은 미국이 나토에서 이탈할 경우 기존 군사 구조를 활용해 자주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비상 계획을 마련 중이다. 이른바 '유럽판 나토' 구상으로, 미국이 맡아온 지휘·통제 역할을 유럽이 대신하고 미군 자산을 유럽군 전력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선임연구원 데이비드 캐틀러는 "진짜 질문은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느냐가 아니라, 동맹국들이 미국의 리더십을 계속 신뢰하느냐"라고 지적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