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라도 한 번 안아보고 싶었습니다" 74년 만에 아들의 품에 안긴 스무 살 아버지
유복자 아들 두고 떠나 산화한 고(故) 김순식 하사 귀환 행사
종전 8일 전 멈춘 스무 살의 청춘, 빛바랜 유품과 함께 돌아와
금성지구전투서 중공군 최후 공세 방어 하다 적 포탄에 산화
[파이낸셜뉴스] 전쟁은 스무 살 꽃다운 가장의 시간을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8일 앞둔 여름날에 멈춰 세웠다. 뱃속에 든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사선을 넘었던 청년은 74년이 흐른 뒤에야 유해로 돌아와 아들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12일 지난 2024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세현리 무명고지에서 수습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순식 하사로 확인 했다고 밝혔다.
이날 호국영웅 귀환행사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고인의 친아들 의영 씨의 자택에서 열렸다.
■ 종전 8일 전 멈춘 시계… 철원 9부 능선에서 발견된 영웅
의영 씨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죽기 전에 유해라도 한번 안을 수 있어 다행이다. 국립묘지에 정중히 안장해 평안히 모시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1932년 8월 경기도 가평군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 하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부인은 외아들 의영 씨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다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7월 19일 중부전선의 운명을 가른 중공군의 최후의 공세 '금성지구 전투'에서 산화했다. 전사 기록 등에 따르면 종전 협정 체결을 앞둔 그날 고인은 적 포탄 파편에 온몸이 관통되는 치명상을 입고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정부는 김 하사의 전공을 인정해 전사 후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국유단은 지난 2024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1달여 동안 육군 제7사단과 강원도 철원군 원동면 세현리 무명 817고지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전을 진행해 김 하사를 비롯해 총 7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영웅의 흔적은 그해 10월, 강원도 철원군 세현리의 무명 817고지 9부 능선에서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육군 7사단 장병들이 전면 굴토 작업을 하던 중 어깨뼈와 갈비뼈가 노출된 고인을 발견했고, 정밀 발굴을 통해 M1 소총 대검 등 유품 70여 점이 함께 수습됐다. 70여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가족을 찾으려 했던 영웅의 간절한 외침과도 같은 발견이었다.
■ "영웅을 끝까지 기억하는 국가"... 보훈의 가치 되새겨
행사를 주관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에게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고인의 얼이 담긴 함(函)을 전달하며 경의를 표했다.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는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며 "남겨진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마지막 한 분을 찾을 때까지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사후 추서된 화랑무공훈장과 함께 유해를 국립묘지에 정중히 안장할 예정이다. 비록 7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스무 살 청년 김순식은 이제 차가운 산등성이가 아닌 가족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됐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여섯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지난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74명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호국영웅,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email protected] 이종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