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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신약 개발이 새 패러다임…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 [논설실의 뉴스 진단]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3 18:22

수정 2026.05.13 18:28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한국신약 전망·바이오강국의 길
신약 개발은 고비용·고위험 구조
1897년 활명수로 출발한 한국 제약
광복 후 내수·복제약으로 제약 자립
작년 사상 첫 100억달러 수출 쾌거
韓, 신약 파이프라인 규모 세계 3위
바이오시밀러·CDMO 실력 압도적
연구능력 비해 경험 부족이 아쉬움
블록버스터 신약이 화두로 떠올라
규제 개선·인허가 속도 빨라져야
글로벌 바이오 5대 강국으로 도약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최근 서울 서초구 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한국 제약산업은 1897년 활명수에서 시작한다. 궁중 비방에 서양 의학을 접목해 만든 이 소화제가 한국의 첫 근대 의약품이었다.

일제강점기 제약업체들은 안티푸라민 같은 가정 상비약을 만들며 민족 제약의 싹을 틔운다.

광복 후엔 '우리 손으로 우리 약을 만들자'는 제약 자립이 구호가 됐다. 내수와 복제약이 오랫동안 한국 제약산업의 기반이었다.



세계 시장의 문을 연 것은 2000년대 이후다. 기술수출, 글로벌 임상이 본격화됐다. 나아가 바이오의약품의 복제품인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 위탁생산개발(CDMO)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기록적인 성과를 낸다.

연구개발 투자도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사상 첫 100억달러 의약품 수출의 쾌거는 이런 여정의 결과물이다. 이제 남은 관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이다.

정부는 바이오 5대 강국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신약 지원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제약바이오가 제2 반도체로 한국 경제의 차세대 엔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으로부터 한국 신약의 가능성과 전망, 바이오 강국의 길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주소는.

▲세계 시장 규모를 보면 우리나라는 13위에 해당한다. 기술력이나 인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지표를 보면 10위권 위상으로도 평가받는다. 제약산업 규모가 지난해 34조원 정도였다. 이 중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4조원대, 유한양행 2조6000억원, 녹십자가 1조9000억원가량의 실적을 냈다. 바이오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강력한 추격자 위치로 평가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10억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 신약은 5조원 넘는 규모의 빅파마에서 나왔다. 지금이 우리에게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신약 개발의 토대는 충분한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는 지표 중 하나가 신약 파이프라인이다. 신약 후보물질 개발 과정을 칭하는 용어다. 신약 파이프라인 규모로는 한국이 세계 3위다. 미국이 1만여개, 중국이 7000여개로 세계 1, 2위다. 한국이 3200여개를 확보해 이들 나라 뒤를 잇고 있는 것이다. 추세를 보면 파이프라인 숫자는 최근 수년에 걸쳐 급속히 늘었다.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다.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 기업도 많이 늘었다. 지난해 기술수출 규모만 20조원을 넘는다. 마지막 상업화 단계를 성공적으로 밟는 것이 과제가 됐다. 그동안 발전 속도가 더뎠으나, 지금은 폭발적 발전의 전 단계인 것으로 조심스럽게 판단한다.

―신약 후보물질이 최근 크게 증가한 이유는.

▲독특한 생태계가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제약 바이오벤처들의 저력이 기대 이상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학구적 분위기가 강한 것도 아니고,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젊은 인재들이 용기를 내고 벤처로 뭉쳐 시장을 만들어낸다. 지역 바이오벤처 숫자가 굉장히 많다. 최소 3000개 넘는 벤처가 있다. 수년간 신약 개발을 위해서 많은 인재들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벤처를 어떻게 잘 키우고 유지시킬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바이오가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많은데.

▲지금도 제약 바이오 전체 시장이 반도체보다 훨씬 크다. 2024년 기준 세계 반도체 매출은 6200억달러 정도였다. 세계 10대 의약품 시장 규모만 따져도 1조3000억달러에 이른다. 해외 기관에 따르면 2028년 글로벌 의약품 지출은 2조3000억달러로 내다본다. 의료기기, 진단, 헬스케어 서비스까지 포함하면 시장은 엄청나다. 고령사회가 빨라지고 소득이 늘어날수록 바이오 시장 수요는 팽창한다. 제약 바이오 산업은 잠재력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았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가 이끌었던 한국 경제 다음 주력산업군은 제약 바이오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00억달러 수출의 동력은.

▲바이오의약품 오리지널들의 특허 만료 시기와 맞물려 한국산 바이오시밀러 해외 진출이 크게 늘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여기에 강한 한국 기업이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약값인하 정책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는 기회다. 우리나라 기술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기술수출에 이어 최종적인 산출물을 만드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최종 산출물 작업이 힘든 핵심적인 이유는.

▲경험 부족이 큰 이유다. 연구능력은 축적됐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협상과 보험, 출시 이후의 프로모션 등 작업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 좋은 신약을 만드는 일과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한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 바이오가 가진 초격차 기술은.

▲아직은 특정 분야에서 완전히 선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초격차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신약이 아닌 범위 내에선 초격차 실력을 찾을 수 있다. 바이오 의약품의 신약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바이오시밀러 분야와 CDMO 분야는 세계 실력이 압도적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만큼 인정받을 만한 기업이다. 향후 이 분야에서 초격차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약 개발에서 한국의 강점은.

▲세계적으로 신약을 만들 수 있는 국가가 많지 않다. 10개국 정도 꼽을 수 있다. 국산 신약은 지금 43개까지 나왔다. 신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여기에 더 희망적인 것은 인공지능(AI) 때문이다. AI 발달이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제약 바이오 산업이다. 제약 바이오의 임상시험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AI는 시행착오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새로운 문물이다. 한국이 바이오 후발주자이지만 빠른 추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를 통해 바이오 선진국가들과 기술적 갭을 빠르게 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AI 기술을 제약 바이오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나.

▲두 분야가 결합되면 파급력이 말할 수 없이 커지지만 두 가지 영역을 같이 아우를 수 있는 전문가나 기관은 아직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AI 전문가와 제약 바이오, 데이터 전문가들이 결국은 컨소시엄 형태로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제약 바이오 전문가가 AI를 직접 활용하기는 어렵고, 반대 쪽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모델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AI 신약 개발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AI의 힘은 데이터이다. 한국의 보건의료 데이터는 양과 질이 압도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실사용 임상데이터는 귀중한 자산이다. 아직은 여러 규제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달라질 것이다.

―블록버스터 신약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필요해 보이는데.

▲임상시험 규제를 개선하고, 인허가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다. 규제기관은 안전성과 속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환경이 중요하다. 기업이 개발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기준을 명확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심사 과정에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심사관이 확충되고 있지만 더 필요하다. 심사의 전문성, 효율성을 함께 높여야 신약 개발 속도가 함께 빨라질 수 있다.

―신약 개발까지 15년, 비용도 수조원이 들어가지 않나.

▲신약 개발은 고위험·고비용 구조다. 기술수출로 수익을 확보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혁신이 어려울 수 있다. 연구자가 장기간 동일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부의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한 자금 지원은 여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글로벌 제약기업과 협력하면 임상 전략, 자금조달, 시장 진입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 기업이 기술수출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업화까지 도전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글로벌 바이오 5대 강국을 위한 핵심 과제는.

▲정부는 바이오 의약 글로벌 5대 강국 도약을 위해 2030년까지 의약품 수출 2배 달성과 블록버스터급 신약 3개 창출, 글로벌 임상시험 3위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연구개발부터 임상, 허가, 글로벌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혁신 생태계 구축이 관건이라고 본다. 제약 바이오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장기 로드맵과 강력한 컨트롤타워 운영이 필요하다.
임상, 허가, 데이터 활용, 세제 지원 등 산업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법과 제도도 시급하다.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생태계, 정책금융, 세제 인센티브가 체계화돼야 한다.
이런 정책 실행력을 높이면 5대 강국 목표는 충분히 가능하다.

■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약력 △한국외국어대 △영국 요크대 박사 과정 수료 △차의과학대 박사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재)글로벌바이오인력양성허브 지원재단 이사장(현)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위원(현)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