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표 문화로 각 나라마다 길이와 생김새도 다양해
日서 젓가락 함께 집는 행위, 유골 정리하는 모습 일치해 금기
음식 먹은뒤엔 '와리바시' 종이봉투에 다시 넣어서 완료 표시
280m 길이 '젓가락무덤'엔 스스로 목숨 끊은 '신벌' 전설이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들 중 으뜸가는 물건을 꼽으라면 젓가락이다. 베트남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젓가락은 각 나라마다 특징도 잘 보여준다. 한국인들의 손재주가 젓가락 사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젓가락의 길이와 미세한 생김새도 다양한데, 베트남의 젓가락이 가장 길다. 눈에 확 뜨이는 것은 오키나와의 대나무로 만든 '우메시'(赤黃箸)다.
젓가락은 기능상 핀셋과 유사하다. 포크에 익숙한 미국인이 젓가락을 핀셋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한쪽을 끼우고,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다른 한쪽을 끼워서 능숙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었고, 엄지손가락을 주된 조종간으로 사용했다. 두 자루를 각각 다른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은 핀셋의 손잡이 역할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할 목적이다.
■부러진 젓가락에도 공양하는 일본인
중국의 귀주에서 만났던 독일인 인류학자의 젓가락 사용 방식도 동일한 원리였다. 냅킨으로 제공된 사각형 천을 마름모 형태로 식탁 위에 깔고 젓가락 두 자루를 냅킨의 끝 쪽에 일렬로 놓았는데, 양쪽 끝이 2㎝ 정도 겹친 상태에서 냅킨으로 젓가락을 말았다. 젓가락을 싼 상태의 두꺼워진 냅킨의 가운데를 절반으로 접으니 핀셋처럼 되었다. 젓가락 두 자루의 끝부분을 겹친 상태로 말았기 때문에, 접었을 때 핀셋의 손잡이에 해당되는 공간이 생기는 묘안이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도 일반적으로 '箸'자를 사용했다. 그 발음이 주(zhu)인데, 동일한 발음인 정지하다는 뜻의 '住'자나 벌레가 먹는다는 뜻의 '주'자가 항해 안전에 불길한 의미를 준다고 하여 대죽 변에 '快'(빠르다, 순조롭다)자를 쓴 '콰이'(筷)에 '子'를 결합해 현재 '콰이즈'라고 발음한다. 중국 내륙에서 아직도 '箸'자를 사용하는 지방이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의 살림살이가 내륙에서 해안 중심으로 확산하는 근세에 문자 사용에도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다.
노인이 계시는 시골의 일본인 가정에서 장기간 생활해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겪는 황당한 장면이 있다. 밥상 위에 생선구이 한 마리가 올라온 경우, 노인께서 생선의 일부를 뜯기 위해 젓가락질을 하는데, 생선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 않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예의 바른 한국인은 노인의 젓가락질을 돕기 위해서 생선의 다른 한쪽을 고정시켜드리는 젓가락질 행위를 한다. 순간, 격노한 노인장께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 순간 일본인들은 '하시와타시'(箸渡し)라고 하는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과 조우한다. 두 사람이 각각 양쪽에서 하나의 물건을 동시에 함께 집어 드는 장면이다. 망자의 화장이 완료된 후 유골을 정리하는 습골 과정에서 젓가락을 사용하여 두 사람이 함께 하나하나 골호로 운반해 넣는 행위와 일치하는 장면이다. 특히 고령의 노인 앞에서 이러한 행위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젓가락이라는 물건에 관한 생활습관이라는 점에서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도 몇 수 위다. 우선 물건에 대한 생각이라는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물건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테지만, 일본인들은 애니미즘에 흠뻑 젖은 사람들이다. 부러진 젓가락을 위한 공양을 하고, 사용했던 젓가락을 젓가락 무덤에 모시는 관습이 일상화돼 있다. 평범한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와리바시'(割箸)는 예외 없이 종이 주머니인 '하시부쿠로'(箸袋)에 들어 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사람은 젓가락을 그 주머니 속에 원위치시키는 것으로 식사 완료의 행동을 결정한다. 정식을 제공하는 식당의 상차림에서 가로로 놓인 젓가락의 끝부분 밑에 있는 젓가락받침(하시오키·箸置き)은 일본인들의 위생 관념과 관련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서는 이 물건을 '콰이전'(筷枕), 즉 젓가락 베개라고 표현한다. 베트남과 코리아의 전통사회에 이러한 물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기원 전후의 모습을 그린 서적으로 생각되는 '위지동이전'의 왜인전에는 "손으로 먹는다(手食)"로 기록되었다. 나라현 사쿠라이시에는 젓가락무덤(하시하카·箸墓)의 이름으로 알려진 길이 280m에 달하는 거대한 일본 최초의 전방후원분이 있다. 전언에 의하면, 무덤의 주인공은 숭신천황(실존인물일 가능성이 높음)의 고모할머니인 와노토도히모소히메노미코토(倭迹迹日百襲姬命)이며, 그녀의 남편이 삼륜산의 신인 오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라고 한다. 밤에 찾아오고 아침에는 삼륜산으로 돌아가는 남편의 정체가 거대한 구렁이라는 것을 알고 소스라친 모습을 보였기에,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단다. 경박한 행동을 후회한 히메노미코토가 자신의 음부를 젓가락으로 자해하여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무덤의 이름이라는 전설이다.
■나라현에는 거대한 젓가락무덤도
그녀의 죽음은 신벌에 해당되고, 신벌의 방법에 신찬을 다루는 신성한 물건인 젓가락이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벌의 대상이었지만, 명예를 지켜주는 죽음이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일본 역사상 명예를 보장한 사형의 최초 사례일 것으로 생각되며, 중세 이후 무사들의 명예로운 죽음에 할복 자해가 허용되는 모습의 원형일 수 있다.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의 '하시하카'인 점을 감안하면, 고고학적인 자료를 포함하여 일본의 역사상 젓가락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일 것 같다.
아직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숙제의 하나가 히메노미코토가 어떠한 존재였길래, 그렇게 거대한 무덤을 조성하였는가 하는 문제다. 10세기 일본의 식생활 관습의 일부를 보여주는 '연희식'(延喜式)에는 "은저삼구, 은시이병, 은저대이구"(銀箸三具, 銀匕二柄, 銀箸台二口)라는 기록이 있다. 각각의 갯수를 헤아리는 단위가 다르다. 당시 수저가 함께 사용되었음과 젓가락받침의 일본어 명칭이 '하시다이'(箸台い)였고, 지금은 '하시오키'로 변하였다.
일본의 밀교와 민간신앙에서는 인간이 저승으로 넘어가는 삼도천(三途川)의 개념이 강하다. 망자는 죽은 뒤 7일째 이 강을 건너는데, 생전의 업에 따라 다리, 얕은 물, 깊은 물의 세 갈래 길을 만난다. 따라서 젓가락을 선물할 경우에는 상황에 딱 맞아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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