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프랑켄슈타인 발언 재조명
미중 다툼 속 더 커진 중견국 고민
안보 등 연대하며 위험 분산 노력
전략자산·외교 네트워크·산업 수단
강대국 대응할 레버리지 강화가 답
생존 위한 결단력·공감대 확보 필요"
1972년 베이징 방문과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을 국제사회로 복귀시켰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94년, 자신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사파이어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외교가에서는 닉슨 자신이 봉인된 문을 열어준 중국이 통제 불능의 거대한 위협으로 성장해 미국을 겨누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해석했다.
1978년 시장경제 도입 등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에 시동을 건 중국은 그 뒤 30여년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경제의 자유를 경험하면, 정치 자유와 인권도 커진다"는 '중국 낙관론'이 확산됐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가입시켜 글로벌 체제 안에 안착시키려 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1990년대 말 이런 논리로 의회와 비관론자들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중국은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며 글로벌 경제에 본격 진입했다. 당시 경제 규모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작은 국내총생산(GDP) 1조3400억달러로 미국의 약 12.6% 수준이었다. 날개 단 중국 경제는 2010년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2위의 경제체가 됐고, 2014년 실질구매력평가(PPP)로 미국도 넘어섰다. 물가수준을 고려한 생산소비 규모에서 미국을 제쳤음을 뜻한다.
그사이 "중국을 변화시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낙관론은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남중국해 인공섬 설치, 대만 무력통일 위협 등 '자기 몫'을 주장하기 시작한 중국은 미국과 각을 세우며 디지털 독재로 정치 상황을 후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은 대중국 포용정책에서 본격적인 견제정책으로 갈아탔다. 2020년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캘리포니아의 '닉슨 도서관'에서 "닉슨의 예언이 현실이 됐다"며 중국을 타격했다. 2021년 중국은 미국 GDP의 77%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지난 13~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강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꺼냈다. 자국 세력권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로, 그는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루면 충돌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양측은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에 합의했지만, '차이메리카'(Chimerica)시대의 종언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미중의 자본·기술·노동의 상호의존과 협력 속에서 확장됐던 경제적 공생과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고성장)의 호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회담은 중견국과 아시아 국가들에 과제와 불안을 남겼다. 중국의 공세적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의 의지와 능력이 위축되고 있다고 의심하는 불안도 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하려는 중견국들의 절박한 움직임을 지적하며 한국과 폴란드, 일본과 호주, 인도와 베트남·캐나다 등의 방산 및 안보 협력 확대를 예로 들었다. NYT는 '고질라'나 '듄' 같은 거대괴물 사이에 끼어 변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무리지어 움직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미국만 바라볼 수는 없다고 느낀 동맹국들이 서로 기대려는 분위기로, 중견국들의 다양한 위험분산 노력"이란 평가도 나왔다.
3개월째에 접어든 이란전쟁을 겪으며 약화된 미국의 전략적 입지,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 균열, 북한·러시아·중국의 3각 연대의 결속력 강화 모습이 더 두드러졌다. 변화하는 힘의 균형과 경제안보 환경 속에서 미국의 동맹들과 중견국들은 미중 충돌에서부터 '동맹의 배신'과 '강대국 담합'까지 유사시 상황을 상정하면서 '플랜B' 마련에 더 노심초사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완력 사용에 더 거리낌없어진 강대국들에 대한 위험분산, 헤징(heging)전략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 단순한 헤징을 넘어 근육질 강대국들의 손발을 묶고,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필요성과 몸값을 올리고, 반격 능력을 높일 전략자산과 외교적 네트워크, 산업적 수단, 경제안보적 레버리지 확보와 강화 전략의 성패에 우리 자존과 생존이 달려 있다. 이에 대한 단호하지만 유연한 정치적 의지와 결단, 사회적 합의 수렴이 우리를 지켜줄 방파제가 될 것이다. 미국에 의한 평화의 시대 '팍스아메리카'가 저물고, 다극·다중심의 국제질서가 커지면서 갈등과 충돌의 일상화 시대가 도래하는 전환기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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