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숏폼 시대에 K드라마의 미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8 18:06

수정 2026.05.28 18:33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 연구소장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 연구소장
박해영 작가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가 막을 내렸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와 마찬가지로 박해영 작가 팬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한 회가 끝날 때마다 명대사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모자무싸'에서 제목과 대사를 통해 표방하고 있는 '무가치함'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지한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싸워온 주적이자 현대인들이 드라마와 같은 서사물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인이 느끼는 삶의 허무는 병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증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지긋지긋한 무가치 속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다.

당연히 서사보다 월등히 중요한 것은 삶 그 자체다. 드라마와 같은 서사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때로 삶의 허무를 달래주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우리는 삶의 무가치를 견디기 위해 서사를 접하며, K-드라마는 오락과 의미를 동시에 제공해온 대한민국의 특산품이다.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드라마는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왔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되어온 K-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협업하면서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시장과 영화 시장의 인력교류가 활발해졌고, 황동혁 감독과 같은 창작자는 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창작자로 발돋움했다.

드라마의 가치는 산업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 같은 큰 의미에 대한 공동체 관련 서사부터 가족이나 친목집단에 대한 미시 서사까지, 드라마는 공동체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드문 장르다. 가족 혹은 유사 가족과 같은 작은 공동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모자무싸'를 비롯한 박해영 작가의 작품을 애호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의 결일 것이다.

대한민국 영상산업 영토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고, 국민 감수성에 중요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K-드라마가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명제는 아니다.

국내 영상산업의 총체적 위기로 드라마 제작편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2026년 제작편수가 반등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지만, 앞으로의 추세는 예상하기 어렵다. 단위당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의 이용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6부작이었던 드라마 회차 수가 12부작으로 줄어든 것은 이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숏폼과 릴스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에게 드라마 시청은 갈수록 버거운 마라톤이 될 가능성이 높다. K-드라마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 제고를 해온 대한민국, 텐트폴 콘텐츠가 필요한 미디어 산업, 다양한 볼거리가 필요한 이용자 모두에게 K-드라마는 여전히 선전해 줘야 할 존재다. 대한민국 드라마는 자신이 가진 가치를 꾸준히 증명해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성과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드라마가 앞으로도 그 가치를 입증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