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 "연차 내고, 밤새고, 비행기 타고"...'국민들 표 돌려달라' 잠실 모인 2030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6.09 13:09

수정 2026.06.09 13:09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닷새째
2030 중심 자발적 참여 이어져
이집트서 귀국·대만인도 현장 찾아
"한국 민주주의 훼손 상황 주목"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앞에 모인 유권자들이 닷새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장에는 2030세대가 다수 분포했다. 사진=김예지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앞에 모인 유권자들이 닷새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장에는 2030세대가 다수 분포했다. 사진=김예지 기자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집회 현장에 보낸 커피 트럭. 사진=김예지 기자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집회 현장에 보낸 커피 트럭. 사진=김예지 기자

태극기를 들고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김예지 기자
태극기를 들고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앞에 모인 유권자들의 집회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선거 절차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선거를 요구했다.

9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 집회 현장에는 20·30대 청년층이 다수 눈에 띄었다. 연차를 내고 나온 직장인, 밤샘 근무 뒤 잠을 줄이고 현장을 찾은 시민, 해외 체류 중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을 '시위대'가 아닌 '유권자'로 표현하며 "(이번 사태는) 정치 성향이 아닌 참정권 침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9시께 다소 한산했던 현장은 오후 10시30분께부터 인파가 늘었다. 주말 3만명대 인파와 비교하면 절반가량 줄었지만 집회는 이어졌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 기준 9일 오전 11시께 현장 인원은 9500명 수준이었다.

로스쿨 준비 중에도 매일 새벽같이 현장을 찾고 있다는 조모씨(29)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핵심이자 꽃은 선거인데 시민들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다"며 "투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출구조사와 개표가 진행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 준비로 바쁘지만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새벽 5시부터 나왔다"며 "국민의 정당한 권리 요구에 정치색을 입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었다. 대만 국적의 A씨(29)는 "대만 사람들도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발생한 이번 일은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한국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집트에 거주하다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는 이모씨(31)도 "선거 과정이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민의 참정권이 무너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목소리를 내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치적 색깔을 떠나서 이 자리에 나와 지키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고 본다"면서도 "강요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이어가는 시민들. 피켓에는 평화 집회를 요청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김예지 기자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이어가는 시민들. 피켓에는 평화 집회를 요청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김예지 기자

분리수거가 체계적으로 진행 중인 집회 현장. 사진=김예지 기자
분리수거가 체계적으로 진행 중인 집회 현장. 사진=김예지 기자

선관위에 재투표를 촉구하는 문구가 유권자의 가방에 붙어 있다. 사진=김예지 기자
선관위에 재투표를 촉구하는 문구가 유권자의 가방에 붙어 있다. 사진=김예지 기자

현장 분위기는 질서정연했다. 시민들은 물품을 나눠주거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자를 모집했다. 의료용품과 여성용품도 비치됐다. 비닐·일반쓰레기·플라스틱 등으로 나뉜 분리수거함도 마련됐다. '끝까지 평화를 지켜달라' '다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 피켓도 곳곳에서 보였다.

'시위대가 아닙니다! 유권자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단 커피차도 등장했다. 커피차와 물품들은 전국 각지에서 현장 시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 '부정선거 재선거' 문구를 붙인 차량도 눈에 띄었지만 참가자들은 대체로 평화롭게 구호를 외쳤다.

음식 배분 자원봉사를 하던 30대 B씨는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참정권을 빼앗긴 국민이 있으면 그들을 대신해서라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지 4일째다. 여기서 2시간 자고 출근한 뒤 다시 현장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씨(28)도 연차를 내고 현장을 찾았다. 박씨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하러 갔는데 투표용지가 없어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며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좌우 이념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은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특검 등을 통해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특정 진영의 정치 행동으로만 해석하기보다 선거 절차의 공정성과 신뢰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 참여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수용은 절차의 신뢰를 전제로 하는 만큼 투표용지 부족과 같은 선거 관리 논란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