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살률 전국 최고… 위기 도민 먼저 찾는 행정 가동
경제난·고립·응급실 사후관리 연계
자살예방·생명존중위원회 개최
지난해 제주 자살 사망자 243명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36.3명
민관학 협업으로 고위험군 조기 발굴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가 전국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위기 도민을 먼저 찾아내는 생명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상담 홍보와 캠페인에 머물지 않고 경제적 위기,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응급실 사후관리까지 한 체계로 묶는 대응이 핵심이다.
9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제주도는 지난 8일 오후 도청 한라홀에서 박천수 행정부지사 주재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위원회' 회의를 열고 자살 고위험군 발굴·연계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위원회는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정책을 심의·자문하는 기구다. 행정부지사와 안전건강실장, 소방안전본부장, 의료계·학계·언론계 위촉직 위원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대목은 제주 자살 지표다. 제주특별자치도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지역 자살 사망자는 243명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36.3명이다. 연령 구조 차이를 보정한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32.4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국 상황도 무겁다. 통계청 2024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살 사망자는 1만4872명으로 전년보다 894명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9.1명이다. 하루 평균 40.6명이 자살로 숨졌다.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 5위였고, 10대부터 40대까지는 사망원인 1위였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다. 지역 비교에서는 연령표준화 자살률도 함께 봐야 한다.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은 사망률이 높게 보일 수 있어서다. 제주가 연령표준화 지표에서도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고령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역 위험 요인이 있다는 뜻이다.
■ 경제 문제가 앞선 제주 자살 위험
제주 자살 문제의 특징은 원인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주특별자치도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지역 원인별 자살 현황에서 경제생활 문제가 103명, 39.9%로 가장 많았다. 정신적·정신과적 문제는 80명, 31.0%였다.
전국적으로는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제주는 경제생활 문제가 더 앞선다. 자살예방 정책을 정신건강 상담만으로 설계하면 제주 현실을 충분히 담기 어려운 이유다.
관광·서비스업 경기 변동, 자영업 부담, 실직과 폐업, 채무, 농어촌 고령화, 1인 가구 증가가 겹치면 위기는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마음의 문제로 보이는 위험 신호 뒤에 생계와 관계의 균열이 함께 놓여 있을 가능성도 크다.
제주도가 고위험군 발굴·연계 체계를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위기 도민은 상담 창구를 스스로 찾기 어렵다. 체납과 실직, 폐업, 질병, 돌봄 공백, 고립, 반복적인 응급실 방문 같은 신호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나타난다. 경제·복지·보건·소방·의료 정보가 따로 움직이면 위험 신호를 제때 잡기 어렵다.
정책의 관건은 기다리는 행정에서 찾아가는 행정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읍면동 복지 인력,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소방, 경찰, 의료기관이 같은 흐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위기 신호를 발견한 기관이 상담과 복지, 고용·채무 지원, 의료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 응급실 이후 생활권 연계가 관건
응급실 사후관리도 핵심 과제다. 자살시도자가 응급실 치료 뒤 다시 혼자 생활권으로 돌아가면 재위험 가능성이 커진다. 병원 치료 이후 정신건강 평가, 사례관리, 지역센터 연계, 가족·보호자 상담, 생활 안정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 이번 위원회가 자살시도자 사례관리 연계율을 주요 의제로 다룬 배경이다.
언론의 역할도 예방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 제주도는 올해 위원회를 재구성하면서 의료계와 학계 전문가 외에 언론인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자살 보도는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자극적 표현을 피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노출하지 않아야 한다. 도움받을 수 있는 상담 정보도 함께 안내해야 한다. 생명존중 문화 확산은 행정 홍보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지역 언론이 위기 신호를 어떻게 다루느냐도 예방 정책의 일부다.
제주형 자살예방 정책은 경제 위기 대응과 함께 설계돼야 한다. 상담 안내만으로는 생활고, 채무, 실직, 폐업 문제를 줄이기 어렵다. 복지·고용·채무 상담과 정신건강 지원이 한 흐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자살예방은 특정 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지역경제, 복지, 보건, 응급의료가 함께 다뤄야 할 공공안전 과제다.
지역별 위험 요인도 세밀하게 봐야 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읍면과 동 지역, 청년층과 중장년층, 고령층의 위기 경로는 같지 않다. 농어촌 고령층은 질병과 고립, 이동 문제를 함께 겪을 수 있다. 청년층은 취업 불안과 관계 단절에 취약할 수 있다. 중장년층은 부채와 가족 부양 부담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평균 수치만으로는 현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박천수 행정부지사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촘촘한 자살예방 정책으로 자살률을 낮추고, 민관학 협업을 바탕으로 자살 위험 없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제주의 자살예방 정책은 실행으로 평가받게 된다. 자살률 전국 최고라는 지표를 낮추려면 위기 도민이 상담 창구를 찾아오기를 기다려서는 부족하다. 경제적 어려움, 정신건강 위기, 사회적 고립, 응급실 사후관리를 한 체계 안에서 연결하는 일이 제주 생명안전망의 출발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