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양보다 질을 고민해야 할 때
반도체 온기 흐를 연결고리 만들길
한국은행 경제활동별 성장기여도에 따르면 1·4분기 반도체가 포함된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업종은 전기 대비 12.5% 성장했다. 제조업 전체 성장률 3.9%를 크게 웃돈다. 성장기여도도 압도적이다. 한은은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분 중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이 55%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전체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다른 산업의 성장 기여는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다. '반도체의, 반도체에 의한, 반도체를 위한 경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초호황이 일자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11일 발표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동월 대비 4만명 감소했다.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1년5개월 만이다. 청년 취업자는 25만5000명 급감해 팬데믹 이후 가장 부진했다. 자동차 등 제조업 일자리 감소세도 2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특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집약형 산업이다. 생산과 수출이 늘어도 고용 증가 효과는 크지 않다. 지난해 4·4분기 반도체 생산은 12.8% 증가했지만 임금근로자 일자리는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산업연구원 분석에서도 반도체의 취업유발 효과는 제조업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 결과 K자형 성장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AI 수요 급증에 따른 반도체 호황으로 '삼전닉스' 등 일부 기업 종사자는 성과를 누리고 있다. 반면 자동차·정유·내수 제조업 종사자들은 고유가·고환율·고물가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 간 격차는 소득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1·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 간 소득 격차는 6년 만에 가장 큰 수준으로 확대됐다. 반도체 업계의 성과급 지급이 본격화하면 분배지표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성장의 양보다 성장의 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취업자 감소를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이나 경기 변동 같은 외부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일시적 충격이 구조적 실업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대기업의 협력사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반도체 산업에서 창출된 세수와 부가가치가 내수·고용 연계 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정책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다음 과제는 성장률 제고가 아니라 K자형 성장의 극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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