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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마지막 시선, 푸른 사진으로 만난다… 산지천갤러리 '푸른 날'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18일 산지천갤러리서 개막
10월 18일까지 윈도우갤러리 전시
노기훈 작가 장노출 사진 연작 소개
4·3 현장 답사 영상·작가노트 공개
원도심 거리서 만나는 열린 전시

노기훈 작가의 사진 작품. 이번 전시는 노 작가의 장노출 사진 연작과 4·3 현장 답사 영상, 작가 노트, 실물 필름 등을 함께 소개하는 아카이브 쇼케이스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제공
노기훈 작가의 사진 작품. 이번 전시는 노 작가의 장노출 사진 연작과 4·3 현장 답사 영상, 작가 노트, 실물 필름 등을 함께 소개하는 아카이브 쇼케이스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원도심을 걷다 통유리창 너머로 4·3의 기억을 마주하는 전시가 열린다. 제주4·3 현장에서 촬영한 장노출 사진과 작업 기록, 답사 영상, 실물 필름을 함께 보여주며 역사와 기억을 사진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묻는 자리다.

15일 제주문화예술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오는 1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산지천갤러리 1층 윈도우갤러리에서 상설전시 'SJC 아카이브 윈도우 푸른 날'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실험적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이어온 노기훈 작가의 대표 연작 '푸른 날'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푸른 날'은 노 작가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제주4·3 현장에서 촬영한 장노출 사진 시리즈다.

장노출 사진은 카메라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 빛과 시간의 흔적을 한 장면 안에 담는 방식이다. 순간을 빠르게 포착하는 일반 사진과 달리 긴 시간 동안 현장에 머문 빛과 움직임이 겹쳐져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12시간의 장노출 방식으로 제주4·3 희생자의 마지막 시선을 상상하고 재현한 작업이 소개된다.

전시의 핵심은 4·3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다. 4·3은 제주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국가폭력과 민간인 희생, 침묵과 왜곡의 시간을 함께 품은 역사다. 사진은 이 역사를 보이지 않는 기억과 사라진 목소리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노 작가의 '푸른 날'은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는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의 틀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가고, 그 장소에 오래 머물며, 희생자의 시선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사진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제목의 '푸른 날'은 아름다운 풍경의 색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가려진 상처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산지천갤러리 전경.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오는 1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산지천갤러리 1층 윈도우갤러리에서 상설전시 ‘SJC 아카이브 윈도우 푸른 날’을 개최한다.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제공
산지천갤러리 전경.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오는 1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산지천갤러리 1층 윈도우갤러리에서 상설전시 ‘SJC 아카이브 윈도우 푸른 날’을 개최한다.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제공

이번 전시는 작품 결과물만 보여주지 않는다. 창작의 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아카이브 쇼케이스' 방식으로 꾸려진다. 아카이브 쇼케이스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후의 기록과 자료를 함께 전시해 관람객이 작업의 맥락을 따라가도록 하는 전시 방식이다.

전시장에는 '푸른 날' 연작과 함께 4·3 현장 답사 영상, 작가 노트, 작업 기록, 실물 필름, 전시 참여 기록 등이 함께 놓인다. 관람객은 사진 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가 어떤 장소를 걸었고, 어떤 기록을 살폈으며, 어떤 시선으로 4·3을 바라봤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개막일인 18일에는 '작가와의 대화'도 마련된다. 노기훈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와 《푸른 날》 작업 과정을 직접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참가 신청은 11일부터 온라인 구글폼을 통해 이뤄진다. 자세한 내용은 제주문화예술재단 누리집과 산지천갤러리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장소인 윈도우갤러리도 의미가 있다. 산지천갤러리 1층 유휴공간을 활용한 윈도우갤러리는 보행자가 통유리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든 열린 전시 플랫폼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거리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도심과 예술을 잇는 장치다.

산지천 일대는 제주의 원도심과 항구, 하천, 생활문화가 겹쳐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4·3을 다루는 사진 전시가 열린다는 것은 기억의 장소를 미술관 안에만 가두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길 위에서 역사와 마주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산지천갤러리의 사진·영상 중심 전문 예술공간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 예술 아카이브의 가치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원도심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것도 목표다.

이번 전시는 제주4·3의 기억을 예술로 다시 묻는 작업이다.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기록을 어떻게 보고 해석할 것인지는 여전히 현재의 과제다. '푸른 날'은 4·3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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