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반도체에 여야 없다, TSMC 만든 건 기술보다 빠른 합의" [인터뷰]
[파이낸셜뉴스]"TSMC가 대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대만이 TSMC를 만들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지난 10일 대만 반도체 산업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국가 전략을 언급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TSMC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흔히 기술력과 경영 전략에 주목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로 향한다.
강 교수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을 1973년 설립된 공업기술연구원(ITRI)에서 찾았다. 대만 정부가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모리스 창을 영입해 산업 청사진을 맡긴 뒤, 기업을 분사시키고 신주과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지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TSMC는 그 결과물이지 출발점이 아니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대만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올인'한 배경에는 생존 논리가 자리한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를 주요 산업으로 보지만 대만에게 국가 생존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2300만명의 제한적인 내수 기반, 외교적 고립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반도체는 선택지가 아닌 필수 산업이 됐다. 반도체 없이는 국가 경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사회 전반에 공유돼 있다는 진단이다. 대만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산)'이라고 부른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TSMC와 UMC가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순간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충격을 받게 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실리콘 실드'(반도체 방패)가 대만 안보의 주요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정치권에서도 확인된다. 대중국 정책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반도체만큼은 예외다. 정권 교체에도 변함이 없다. 관련 법안과 예산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한다. 대만은 반도체 관련 학과와 대학원을 적극 육성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의 전액 장학금 지원도 오래전부터 이뤄졌다. 2023년에는 '대만형 칩스법'을 도입해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와 기업 지원도 확대했다. 강 교수는 대만 반도체 정책의 특징으로 일관성을 꼽았다. 그는 "반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다"며 "교육과 세제, 투자 지원이 하나의 전략 아래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산업 정책 추진 속도에서도 양국 간 차이가 드러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싸고 전력과 용수, 환경 규제, 지역 이해관계 등을 놓고 논쟁이 이어지는 한국. 대만은 국가적 합의 아래 속전속결로 움직인다. 강 교수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닌 사회적 합의의 차이로 해석했다. 그는 "대만은 국가가 먹고살 길이라고 판단하면 사회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며 "속도의 차이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대만 반도체의 경쟁력은 TSMC라는 단일 기업보다 산업 생태계에서 뚜렷하다. 한국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설계와 제조, 후공정을 상당 부분 통합한 구조라면 대만은 철저한 분업 체계를 선택했다. TSMC는 생산에 집중하고 미디어텍 같은 팹리스(설계) 기업과 후공정 업체들이 각자의 영역을 맡는다. 강 교수는 대만 반도체의 진짜 경쟁력이 특정 기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에 있다면서 "TSMC는 회사 하나가 아니라 생태계의 정점"이라고 평가했다.
성공 뒤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반도체 중심 성장 전략이 경제를 끌어올렸지만 산업 간 격차도 확대됐다. TSMC 등 첨단 산업 종사자들의 소득은 크게 늘었지만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그는 "반도체 산업의 성공이 사회 전체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집값 급등과 청년층의 박탈감 등 'K자 양극화' 성장 역시 대만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AI 시대를 맞아 한국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AI 산업이 발전할수록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지금은 대만이 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AI 시대 경쟁 구도는 파운드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HBM 분야는 한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의 추격은 경계해야 할 변수로 꼽았다. 강 교수는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 일정 수준까지 따라오는 것은 시간 문제"로 봤다. 다만 반도체 시장이 미국의 설계 소프트웨어와 네덜란드 ASML 장비, 일본의 소재, 한국의 메모리가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 산업인 만큼 어느 한 국가가 모든 것을 장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중국도 결국 밸류체인 안에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