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건물 안 무너져도… 의료·통신 멈추면 ‘도시회복력’ 붕괴" [제9회 재난안전 지진포럼]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기조강연
오상훈 부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지진 후에도 시민일상 지킬 인프라 필요
대형병원에 ‘충격 흡수 구조’ 의무화 검토
부실 필로티에 ‘묶음형 내진보강’ 시급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파이낸셜뉴스·행정안전부 공동주최로 열린 제9회 재난안전 지진포럼에서 귀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상훈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강재도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송의달 파이낸셜뉴스 사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 회장, 김광용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전선익 파이낸셜뉴스 부회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혜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지진방재센터 연구관,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 김홍재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 박우진 행안부 지진방재정책과장 사진=박범준 기자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파이낸셜뉴스·행정안전부 공동주최로 열린 제9회 재난안전 지진포럼에서 귀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상훈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강재도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송의달 파이낸셜뉴스 사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 회장, 김광용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전선익 파이낸셜뉴스 부회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혜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지진방재센터 연구관,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 김홍재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 박우진 행안부 지진방재정책과장 사진=박범준 기자
"건물 안 무너져도… 의료·통신 멈추면 ‘도시회복력’ 붕괴" [제9회 재난안전 지진포럼]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안전한 도시는 아니다. 병원과 통신망이 멈추는 순간 도시 기능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오상훈 부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사진)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파이낸셜뉴스와 행정안전부가 공동 주최한 제9회 재난안전 지진포럼 기조강연에서 "국내 지진 방재정책이 건물 붕괴 방지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내진' 중심에서 재난 이후에도 도시가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는 '도시회복력(Resilience)' 중심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지진 피해 교훈을 통한 지진방재정책의 방향성 제안'을 주제로 강연한 오 교수는 경주·포항 지진을 비롯해 일본 노토반도 지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미얀마 강진 등을 분석하며 "지진 피해는 건물이 무너지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통신·전력·상하수도·교통 등 도시 인프라가 동시에 마비되는 복합재난"이라며 "재난 이후 도시 기능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핵심 인프라로 '의료'와 '통신'을 꼽았다. 그는 "지진 직후에는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해 병원의 업무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천장재 탈락이나 의료장비 파손, 엘리베이터 정지 등으로 병원이 멈추면 재난 대응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당시 일부 내진 병원들은 구조적 붕괴는 피했지만 조적벽 균열과 천장재 탈락, 스프링클러 누수, 의료장비 파손 등으로 진료 기능을 상실했다. 반면 지반과 건물 사이에 충격 흡수 장치를 설치하는 '면진(免震) 구조' 병원들은 달랐다. 튀르키예는 2011년 반(Van) 지진 이후 100병상 이상 병원에 면진 설계를 의무화했는데, 대지진 당시 면진 병원들은 지진 직후에도 수술실을 정상 가동하고 인근 환자까지 수용하며 재난대응 거점 역할을 했다. 오 교수는 "중대재해 거점관리센터와 병상 200개 이상 대형병원, 응급치료센터에 대해 국가 차원의 면진 구조 의무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포항 지진 당시 파장을 일으킨 필로티 구조물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오 교수가 이끄는 부산대 연구팀이 장성동 일대 필로티 건축물 131개 동을 전수조사한 결과 약 3분의 2가 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주차장 확보를 위해 코어를 한쪽으로 치우친 편심 구조로 설계하면서 건물이 비틀리고 특정 기둥에 하중이 집중됐다"며 "더 큰 문제는 시공 품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전단보강근 간격이 기준에 미달하거나 철근 피복 두께를 과도하게 두껍게 시공해 기둥의 유효 단면이 줄어드는 등 부실시공 사례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해법으로 그는 "지역 단위로 수십개 건축물을 묶어 대형 건설사에 발주하고 전문가가 설계·감리에 참여하는 '묶음형 통합 내진보강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신 인프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본 노토반도 지진 당시 정전과 기지국 파손으로 통신 장애가 장기화되면서 고립 지역의 피해 파악과 구조활동이 지연됐고, 주민 대피와 재난 정보 전달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그는 "통신은 전기, 수도와 다름없는 생존 인프라"라며 "평상시 통신 기지국의 내진 성능을 점검하고 재난 발생 시 즉각 가동할 대체 통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지진 방재의 목표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집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병원이 다친 이들을 치료하며, 통신과 전력이 유지돼 재난 이후에도 도시가 신속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회복력 높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지진정책의 새로운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이보미 팀장 김만기 이설영 김경수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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