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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항미원조는 박제된 구호가 아니다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抗美援朝
中의 6·25 개입 미화 프레임
美 침략자 vs 中 구원자 포장
중공군 참전 후 사상자 급증
北·中 혈맹 서사로 계속 변주
용납땐 침략 조력자에 면죄부
현충원 무명용사부터 추모를

노동일 주필
노동일 주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무명용사 추모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등과 함께 '무명용사 봉안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명용사 봉안관에는 "6·25전쟁 등에서 전사하여 유해는 수습하였으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이름 없는 무명용사(無名勇士) 5,800여 위(位)를 모신 공간"이라는 설명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전사자가 이토록 많은 사실에 놀란다. 봉안관 건물 외벽에 새겨진 "이름마저 바친 충절,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 문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생명을 조국에 바친 호국영령들이 무명으로 남은 것은 혹시라도 신원파악 등 우리 후손들의 노력이 소홀했던 탓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민족의 비극이자,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린 호국(護國)의 역사이다. 6·25전쟁의 남북한 사상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530만명에 달한다. 특히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은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계기가 되었다. 미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미군 전사자의 70% 이상이 중공군 참전 이후 발생했다. 특히 장진호전투 등 중공군의 동계 공세 기간 단 몇주 만에 수만명의 사상자가 집중되었다.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의 참전은 이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 땅에 남긴 무도한 도발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를 '조국해방전쟁',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이라는 미화된 이름으로 부른다.

중국 공산당이 6·25전쟁에 참전하며 내세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라는 구호는 철저하게 기획된 선전 수사학이다. 대내적으로는 '보가위국(保家衛國·집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의 구호를 결합하여 미군은 '침략자', 자신들은 '정의의 구원자'로 포장했다. 왜곡된 항미원조 용어는 오늘날까지 중국과 북한에서 체제 결속의 혈맹(血盟) 서사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평양에 있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 기단부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어깨를 나란히 한 조각과 함께 항미원조의 공적이 찬양조로 새겨져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일 7년 만의 북한 국빈방문에서 '조중우의탑'을 참배하고, 항미원조 역사와 전쟁 영웅들을 부각하는 행보를 보였다. 아주대 한상준 교수가 분석하듯, 중국은 항미원조를 현재의 미중 패권 갈등에 대응한 외교적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북러가 급격히 밀착하자, 중국은 6·25전쟁을 함께 치른 자신들이 북한의 '원조 혈맹'임을 상기시키며 북한을 다시 중국 영향권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한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명확히 하는 데 항미원조 구호를 활용하는 것이다. 항미원조는 1950년 10월의 참전 명분으로 박제된 언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시기에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가 교육 프로그램에서 '항미원조' 표현을 소개하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침략자의 프레임을 민주사회의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여론의 질타에 게시물을 내리긴 했지만 어이없는 발상의 경위가 무엇인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게다가 사업회는 오는 8월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기획된 해외 항일유적지 연수에서 중국 항미원조기념관 방문 일정을 포함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가 안규백 장관 지시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해당 일정을 검토했던 건 중대한 과오라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항미원조라는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병기하는 행위는 북한의 불법 남침 역사를 가리고, 침략의 조력자였던 중공군의 가해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항미원조라는 용어는 결코 대등한 역사적 해석의 선택지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외국 국가 정상이 타국을 방문할 때 무명용사탑(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은 방문국과 그 국민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표하고, 양국 간의 역사적 유대와 동맹 관계를 확인하는 외교적 관례이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장소는 그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이 집약된 '성역'이기 때문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모레 25일은 6·25전쟁 76주년이다. 우리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여러 기관장들이 현충원을 참배하지만 과문인지 몰라도 무명용사 봉안관 참배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학생과 교사들에게 6·25전쟁의 역사적 해석을 교육하고 싶다면 성역인 현충원 무명용사 봉안관부터 참배하는 게 마땅하다. 전쟁기념사업회 구성원들부터 모범을 보이기 바란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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